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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배낭 무게

닉네임
노동자
등록일
2010-01-25 14:34:24
조회수
8078
등산이던 여행이던 바다낚시던 거의 대부분 혼자서 나서는 괴팍한 버릇이 있다.

대부분 자유로움을 찾아 나서는 길인데 옆에 동료가 있으면 신경 쓰이고 의논해서 결정해야되는 것 자체가 귀찮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종주산행이나 장거리 여행을 떠날라 치면 배낭이 무거위질 수 밖에 없다. 버너, 코펠, 텐트, 침낭, 식량, 식수 등등을 빠짐 없이 챙겨넣다 보면 무게가 20킬로 정도 된다. 이정도면 여행길이던 등산이던 마칠 때까지 내내 등짝이 괴롭고 어깨가 아프고 다리도 피곤하다.



배낭의 어깨끈을 조였다 풀었다 조절을 해보고, 등에 달라붙은 배낭과 등 사이에 뒤로돌린 양손을 넣어 어깨의 부담을 줄여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내 몸에서 배낭을 분리하기 전에는 고스란히 나의 육체가 감당해야할 몫일 뿐이다.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고, 무게를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배낭을 채우는 이유는 한마디로 나의 마음이 자유롭기 위한 것이다. 등산 중 또는 여행 중 내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면 어디서든지 야영할 수 있고 몇 끼니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숙소나 식당을 고르거나 확인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그냥 낮이던 아니면 밤이던 내가 원하는 곳에서 머룰다 떠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을 얻기 위해 그렇게 나의 육체는 혹사 당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인생의 배낭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있고 그 무엇이 오히려 나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지 한번 생각해 본다.
직장생활 20년째, 부채도 자산이라지만 아직도 대출 통장을 이리 저리 돌려야하는 아내의 수고스러움, 단지 노동조합의 지부장, 사무국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장이 고용승계를 확언했으나 졸지에 시 하청업체에서 내쫓긴 후배들, 거대 자본의 횡포에 맞선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졸지에 남쪽 끝으로 내쫓기고 회사 앞 횡단보도에서 텐트치고 숙박하는 어느 노동자의 서글픈 현실, 잘 보지는 않지만 우연히 켜본 텔레비전에서 개인적으로는 정신감정을 의뢰해야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는 정치인의 얍삭한 얼굴이 크로즈업 될 때 순간적으로 텔레비전을 깨어 빠셔버리고 싶은 격한 충동을 느낄 때, 그놈의 밥 때문에 진보적 가치를 우선해야될 노동조합에서 보수의 대표주자격인 분의 이사장 취임에 사실상 환영(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것은 노동조합의 성격상 환영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하는 것 등등 .....



그런데 여행길에서의 배낭 무게 만큼 나의 마음은 자유로워지는데 과연 내 인생의 배낭은 무거워질 수록 나의 인생도 자유로워지는 것일까?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인생의 배낭에 차곡차곡 채워놓고 혼자서 가슴앓이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배낭에 차곡 차곡 넣어둔 것들 때문에 나의 인생이 자유로와 지는 것이 맞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이유는 그냥 간단 명료하다.
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고 그래서 직접,간접으로 모든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가는 존재인데 마치 주변의 사람이 나와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살아간다면 이는 사람으로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최소한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하지 못한다면 나 역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되기 위해 내 인생의 배낭에 이웃들의 분노와 억울함과 불의와 차별을 차곡 차곡 쌓아 놓는 것이리라.




지난 여름 휴가 때 혼자서 9박 10일간의 제주도 배낭여행 마지막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무거운 배낭을 지고 한라산 백록담 아래 윗새오름까지 올랐다 잠시 쉬어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그렇게 여행 내내 나를 괴롭히던 배낭의 무게가 갑자기 내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홀가분해진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나 전날 야영하면서 물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빠트리고 왔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9박 10일 동안 지독히도 내 등짝에 달라 붙어 육체를 고단하게 만들더니 이제 내 몸이 배낭을 한몸으로 받아들이나 보다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인생의 고단한 배낭도 마찬가지 이리라. 배낭 속에 쌓여 있는 이웃의 모습이 이웃이 아닌 나 자신의 모습으로 다가 올 때 한라산 윗세오름에서 처럼 어느 순간 내 인생의 배낭도 훨씬 가벼워지리라. 하지만 당장은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좀 더 오랜 동안 좀더 마음을 열고 실천해야만 가능하리라.



오늘도 나의 인생의 배낭에 더 많은 것을 넣어도 크게 무겁지 않을 그 날을 기다리며 더 넓게, 더 크게, 더 높이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야지
작성일:2010-01-25 14:34:24 210.178.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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