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오이의 김장김치 담그는 '1박 2일' 이야기

때는 바야흐로 12월초 김장철이다. 주말 농촌의 풍경도 집집마다 할머니, 아빠, 아이들 할 것 없이 배추, 무를 뽑는 모습이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김장하는 속사정을 알고 보면 눈에 보이는 것만큼 즐겁지만은 않다. 김장을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보면 김장하면 떠오르는게 '와! 고생 좀 하겠네' 일 것 이다.

▲ 처가에서 배추와 무를 가져와서 거실에 펼쳐 놓으니 집안이 꽉 차는 것 같네요.
서현이네도 주말을 맞아 김장을 계획하였다. 그런데 올해는 어머님의 허리수술로 인해 저와 아내 둘이서 하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엄두도 안 났지만, 아내와 배추는 몇 포기를 하고, 준비할 재료는 뭐가 필요한지 계획을 준비하다 보니 한 번 해 볼만 할 것 같았다. 아내도 힘들지만 도와주기로 동의했다.

여기서 잠깐! 아내가 동의하고 남편이 김장을 한다?
좀 의아해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 잠깐 설명드리면 아내가 1년전(2010년 12월) 위암 수술후 음식조절로 인하여 살도 많이 빠지고, 기운이 없어 비실대는 이유로 제가 김장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가로 저희집은 원래 남자인 제가 요리에 관심이 많고 아내는 요리에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토요일 오전 처가에 있는 배추, 무를 뽑고 고춧가루, 깨 그리고 삼천포 처 이모부가 배에서 직접 잡아서 이모가 담궜다는 멸치젓갈 등을 얻어 집으로 가져왔다. 가져온 걸 아파트 거실에 펼쳐놓으니 거의 가관이다. 입이 떡 벌어진다. 김장은 한다고 했지만 약간 긴장되고 엄두가 나질 않는다.

서현이 보고 배추를 하나씩 욕실로 달라하고 반을 쪼깨어 욕조에 절이기 시작한다. 절이기를 30여분 벌써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는 말이 생각난다. 문득 어머님 생각이 난다. 이전까지 매년 어머님와 함께 김장을 했는데 그때마다 절이는 것은 어머님이 다하셨다. 거의 100포기를 절였으니 아!~~ 고맙고 죄송하다. 늘 옆에서 보조만 하고 있었으니...

▲ 욕실의 욕조는 다양도로 사용됩니다. (김장할때 배추 절이기는 딱 이예요.)

배추를 절여 놓고 양념과 섞을 재료들을 손질한다. 배추 나르는 걸 도와준 아내가 피곤하다면 한숨 자고 나와 재료손질을 도와준다. 역시 재료 손질은 나보다 아내가 훨씬 빠르고 잘 한다. 무채, , 생강, 마늘, 쪽파, 파 등등 양념에 들어갈 재료들을 바쁘게 손질해 준다.

젓갈, 고춧가루, , 멸치/다시마 육수와 함께 잘 섞은 다음 각종 재료들과 다시 한번 잘 섞어준다. 생각보다 양념이 잘 된 것 같다. 맛이 꽤 괜찮다. 역시 재료가 신선하고 좋아야 좋은 맛이 나는 것 같다.

▲ 무가 재밌게 생겼죠? (발 같기도 하고 손 같기도 하고...)

▲ 내 마음을 대신하는 사랑입니다. (하트 모양)

남자인 제가 김장을 직접 해볼려고 하는 이유도 아내에게 좋은 재료로 만든 건강한 김치를 먹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되었다. 실제 이유는 어머님의 수술로 김장을 못하게 되었지만, 김치를 안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트나 쇼핑몰에서 파는 김치를 사서 먹을 수도 없고 이왕이면 좋은 걸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나의 작은 배려이자 사랑인 것이다.

▲ 서현이와 같이 김장 버무리기. (서현이도 많이 커서 이제 곧잘 하네요.)

▲ 김장 버무리기 (맛이 나요. 맛이나!!)

그리고 다음날 어제 절여놓은 배추를 잘 헹구어 원기둥처럼 탑을 쌓아 물을 빼고, 서현이를 포함한 우리 4식구가 모여 김장버무리기를 시작하였다. 버무리기를 시작한지 2시간 정도가 지나고 끊어질듯한 허리, 절여오는 발을 참아가며 양념버무리기가 끝났다. 김장의 기나긴 1박2일이 끝나는 줄 알았다.

▲ 잘 싸서 김치통에 가지런히 넣고...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양념 버무리기를 한다고 벌려놓은 대야, 소쿠리, 양념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이걸 또 언제 다 씻나???

아내가 정리해서 주기로 하고 내가 욕실에서 대야, 소쿠리 기타 잡다한 그릇들을 씻기 시작한다. 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정리가 마무리 되었다. 말 그대로 심신이 녹초 일보직전...!!! 그대로 거실 바닥에 누웠다. 이렇게 편안할 수가...!!! 말 그대로 편안함의 극치가 느껴진다.

이런 힘든 김장은 내가 왜 하고 있는가?
, 남자인 내가 왜 먼저 일을 벌려서 고생하고 있는가?

이유인즉 이렇다.
매일 먹는, 매일 먹을 수밖에 없는, 매일 먹어야 하는 김치를 건강하고 좋은 재료로 만들어 아내와 우리 아이들이 먹을 수 있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처음에는 건강한 김치를 먹자라는 취지로 마음먹고 시작한 김장이지만, 내가 직접 어머님처럼 주도해서 해보니 허리가 아프고 어깨도 아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끝날때까지 계속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픈 고통 때문인지 몰라도 어머님의 고마움과 죄송스러움을 깊이 느끼게 되고, 아내도 여태까지 어머님 보조로 김장할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여태까지 어머님 담가주신 김치를 먹은 게 아니라 어머님의 사랑을 먹은 것 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랑을 받았으면 받은 만큼 배풀어야 한다고 한다. 난 김장을 계획하면서 위암 수술후 많이 먹지도 못하고, 먹고 싶은 것도 참고 못 먹고, 먹더라도 마음적으로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아내에게 매일 먹는 김치라도 마음 놓고 편하게 먹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담근 김장은 아내가 해야 할 일을 해 준게 아니라, 내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을 준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금 나의 사랑으로 만든 김치를 맛있게 먹는 아내를 보고 있으니 그냥 미소가 지어지면서 좋다. 이런게 행복 아닐까?

"서현이네 김장은 사랑으로 담근 행복입니다."

▲ 서현이네 사랑이 담긴 행복입니다. (한 30포기 정도 한것 같은데 6통정도 되네요.)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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