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12) '비양도와 검멀레'

<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이 글은 '갯가' 시민기자님이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도보로 여행한 뒤 자신의 블로거에 올린 것으로, 이를 일부 고쳐 뉴스사천에 다시 올려주셨습니다. -편집자-

2009년 9박10일 동안의 제주 올레길 여행은 오랫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왔다는 뿌듯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올레길은 4-5개 코스가 새로이 개장되었고 작년에 가보지 못한 2개 코스를 걷고 싶은 욕심에 또 다시 제주 올레길에 나섰다. 작년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올해도 역시 기본적으로 어디든지 혼자서 야영하고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장비를 챙겨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2010년 8월14일 새벽5시 애마 갤로퍼를 혼자 운전해서 장흥으로 출발했다. 새벽녘 안개에 묻힌 도로에는 오가는 차가 거의 없어, 편안하게 장흥 노력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7시20분. 고흥의 녹동항에서 출발하는 배는 서너 번 이용했으니, 이번에는 인근 장흥항에서 출발하는 오렌지호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7-8천원 정도 선비는 비싸지만 제주 상산포까지 걸리는 시간이 1시간 40분이고, 엔진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아 마치 승용차를 타고 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쾌적한 카페리호였다.

▲ 오렌지호는 차량도 실을 수 있다.

더군다나 제주도의 첫 올레 코스가 1+1 우도 코스였기 때문에, 오렌지호가 성산포항으로 입항하자마자, 곧바로 우도행 도선을 탈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장흥의 노력항 터미널에서 좌석표를 끊으면서 혼자왔으니 창가쪽을 부탁한다고 했다. 그런데 좌석번호를 찾아가보니 얼씨구! 창가에다가 옆자리에 아가씨가 먼저 앉아 있었다. 서먹하게 있다가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보니 광주에서 우도로 혼자서 여행간단다. 나 역시 우도에서 1박할 생각이었는데 참 잘 되었다 싶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성산포에 도착했다. 이어 우도행 도선표를 끊어 배에서 대화를 나누다보니, 애고~ 아가씨는 걸어서는 우도를 다니지 못하겠단다. 자전거나 네발 오토바이를 빌려서 우도를 둘러보겠다고 한다. 아쉽지만 미련없이 인사를 나누고 우도에서 내렸다. 선착장 앞에 있는 분식점에서 땅콩 국수 메뉴가 보여 땅콩 국수 한그릇을 사 먹고 우도 올레길을 출발했다.

▲ 우도 올레길 가는 길

우리 동네로 따지면 거의 태풍 수준의 바닷 바람을 맞으며, 바닷길로 좁은 농로로 올레표시를 따라 약 1시간여 걷다보니 비양도에 도착했다. 비양도 입구 정자에서 잠시 쉬는데 마을 할머니들께서 왜 그렇게 큰 짐을 지고 오느냐고 물으셨다. 제가 작년에 제주 올 때에는 돈이 없어 잠잘거 먹을거 입을거 다 싸가지고 오다보니 큰 짐을 지고 왔는데, 아직까지도 돈을 벌지 못해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작은 다리를 건너 비양도에 들어서니 제주도 그리고 제주도에 딸린 우도, 그리고 우도에 딸린 비양도, 그리고 비양도에 딸린 작은 바위등대섬이 있다. 섬에서 섬을 바라보는 기분이 묘하다.

▲ 비양도 입구. 비양도에는 제법 큰 민박집이 있다.
▲ 비양도의 끝에 있는 정자가 오늘의 야영지가 된 곳이다.

비양도를 둘러 보고 나오는데, 아까 정자에 계시던 마을 할머니께서 부르시길래 가서 보니 삶은 옥수수 두개를 주신다. 한 개는 저기 혼자서 가는 저 아가씨 주라고 하시길래, 재빨리 아가씨를 뒤따라가 삶은 옥수수를 권하며 우도 올레길 동무를 만들었다. 서울에서 올레길 걸으려고 혼자서 왔단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길을 걷다가 검멀레에 도착했다. 검멀레는 우도봉 아래 있는 작은 모래밭의 모래 색깔이 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0년 전 그 때에도 혼자서 배낭 메고 제주도 여행할 때 혼자서 야영했던 곳이다.

검멀레 바닷가에 내려서니 외국인 몇 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근데 길동무 아가씨에게 외국인이 뭐라고 하니까 유창하게 말을 받아 대화를 나눈다. 외국물 꽤나 먹었나 보다 하고 주눅들어 있는데, 어랍쇼 나도 알아듣는 말이 있었다. "캔유 메이커 픽쳐?" "예설 원투쓰리..." 뭐 이정도 알아 들으면 기본적인 영어 회화는 가능한게 아닌가 ??

▲ 검멀레 멀리 우동봉 꼭대기의 등대가 보인다.

가파른 우도봉을 씩씩거리며 오르는데, 우도 올레길 처음 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는 젊은이가 있어 함께 일행이 되어 우도봉 정상으로 올랐다. 셋으로 불어난 일행은 우도봉 아래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마을을 지나면서 제주감귤 막걸리를 몇 병을 사들고, 경치 좋은 바닷가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슬쩍 "명바기 어때요"하고 묻자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 보더니 "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하고 되묻는다.

▲ 우도봉 정상을 향해 오르는 서울 아가씨.

자신은 환경운동연합 회원이고, 촛불집회에도 참석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마음이 통할 것 같았지만, 미리 예약한 숙소가 성산포에 있어 마지막 배를 타고 우도를 떠나야 한단다. 아쉬운 마음으로 마지막 배에 올라탄 아가씨와 젊은이를 배웅하고 혼자 비양도로 향했다. 오후에 비양도 지날 때 야영지로 찍어 놨기 때문이다. 올레길을 가로질러 비양도로 가는 길에 농협 마트가 있어, 매트를 사고 막걸리 두 통을 산 다음, 비양도 남쪽 끝 정자에 텐트를 쳤다.

▲ 올레길 첫날 우도에 딸린 섬, 비양도 남쪽 작은 정자의 보금자리. 밤새 불어제낀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이곳은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 웬만한 물건은 놓자마자 바람에 날려가 버린다. 혼자서 낑낑거리며 텐트를 친 뒤, 막걸리 두 통을 저녁 삼아 마시고 제주도에서 첫 날을 보냈다. 첫날부터 잠을 자다가 거세게 바람이 불어 텐트 폴대가 휘어지는가 하면, 텐트가 얼굴에 닿아 몇 번이고 잠을 깼다. 하지만, 새벽부터 시작된 일정으로 피곤한 탓이었는지, 다음날 별 탈 없이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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