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마진, 아무도 만족하지 않는 통합.. 사천-진주는 본보기 삼아야

행정통합이 해당 지자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구성원들의 의지도 다를 것이기에 특정 사례를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런데도 통합이 이뤄지면 인구가 늘고 경제규모도 커지며 삶의 질이 좋아질 것처럼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왜 이토록 행정통합에 너그러울까? 어쩌면 그만큼 처한 현실이 어렵고,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지 모르겠다.

이유야 어떻든 현실을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막연한 기대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낳을 수 있고, 설마 하는 생각은 곧 현실로 닥칠 수 있음이다.

▲ 1995년에 통합한 사천시는 시청사 위치 문제 등으로 오랜 갈등을 겪었다.
행정통합의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준비 없는 행정통합, 다수 주민들의 뜻이 반영되지 않은 행정통합은 그 후유증이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은 경험으로 알 수 있다. 1995년 사천-삼천포가 그랬고, 2010년 창원-마산-진해(줄여 창마진)가 그랬다.

먼저 사천시 사례부터 간단히 언급하면, 결과적으로 주민투표에 따라 통합을 결정하긴 했으나 관의 주도로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1차 투표에서 부결된 것을 2차 투표까지 이어가 통과시켰다.

당시 삼천포시는 찬성 의견이 많았고, 사천군은 반대 의견이 많았다. 결국 시 명칭을 ‘사천시’로 하고, 통합청사도 삼천포와 사천의 중간에 두기로 약속하면서 사천군의 찬성을 이끌어냈다.

어렵게 통합에 성공한 통합 사천시는, 그러나 이후 지역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공무원 조직 속에서도 사천과 삼천포로 나뉘어 물밑 갈등이 많았고, 선거 때마다 고질적인 지역주의가 머리를 내밀었다. 각종 정책을 두고도 왜 사천에만 하느냐, 삼천포에만 하느냐는 식의 갈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더욱 눈에 띄는 대목은 통합 이전에 찬성 열기가 높았던 삼천포의 경우 인구가 줄고 지역경기도 둔화돼 후회의 목소리가 크다는 점이다. 결국 통합 이전에 기대했던 긍정적 변화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창마진 통합 1년 여, 그러나 아무도 만족하지 않는다

요즘 설익은 행정통합으로 갈등이 극에 달해 있는 곳은 창원이다. 통합 이전, 반드시 주민투표를 통해 통합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된 채 세 지자체의 지방의회가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결과물이다.

▲ 창원시 마산합포구청(옛 마산시청). 근무 인력이 1/3이하로 줄고 민원인의 발길도 끊겨 인근 상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당시 현 정부가 강력하게 행정통합을 부채질하는 가운데 지방의원들은 정치권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대부분 한나라당 소속이던 이들 지방의원들은 6.2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공천권을 쥐고 있는 윗선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으론 의원들 역시 ‘통합에 따른 기대효과’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둔 반면 그 이면의 그림자를 살피는 일에는 소홀했음이다.

그렇게 탄생한 통합창원시가 출범 1년을 넘기면서 온갖 잡음에 시달리고 있다. 급기야 “다시 갈라서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것도 시의회에서 결의안을 채택한 수준이어서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창원시가 이런 상황이다 보니 통합을 고민하고 있는 다른 지자체 입장에선 좋은 본보기를 만난 셈이다.

창마진 통합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가장 반겼던 곳은 마산이었다. 도시 규모나 활력 면에서 점점 창원에 뒤처지고 있던 마산으로선 통합을 계기로 반전의 기회를 노릴 수 있다고 봤다. 당시 황철곤 마산시장을 비롯해 지역 정치계도 크게 반겼던 ‘통합’이다.

그러나 2011년말 둘러본 마산지역 분위기는 썰렁했다. 상인들은 “상권이 창원으로 더욱 옮겨갔다”며 지역 경기가 ‘바닥’임을 하소연했다.

특히 옛 마산시청 주변은 상실감이 더욱 컸다.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상인 A씨는 “시청은 창원으로 옮겨가고 남은 것이 마산합포구청인데, 직원이 예전에 비해 1/3도 안 남았다. 민원인도 뚝 끊겨 장사가 안 되니 문 닫는 가게도 많다”며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 옛 마산시청 인근 문 닫은 가게들. 수 개월째 주인을 못 찾고 있다.
근처 한 식당.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식당에는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주인 B씨 역시 한숨이 깊었다. 그는 “예전 이 시간엔 앉을 자리가 없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손님도 공무원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달라졌다”며 변화된 분위기를 전했다.

부동산업체 사장 C씨는 “경기둔화가 부동산 거래 실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점포 임대 광고를 해도 수개월째 주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단다. 예전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단다.

“사실 처음엔 멋도 모르고 통합에 찬성했다. 다들 통합하면 인구도 늘고 돈도 돌고 해서 좋은 일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통합효과가 뭔지, 애초 통합 취지는 뭐였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마산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인 A씨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현재 마산에선 일부 상인과 시민들을 중심으로 마산되찾기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한 번 통합한 행정구역을 다시 쪼개기는 쉽지 않다.

포기 말아야 할 원칙 두 가지, ‘주민투표’와 ‘핵심사항 사전의제’

창마진이 통합 창원시를 향해 빠르게 달려갈 때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들은 “주민투표에 부칠 것”을 주장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 조유묵 사무처장 역시 그런 주장을 폈는데, 사천시민들을 향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 조유묵 사무처장
“사천과 진주가 통합할 경우 사천엔 득 될 게 별로 없다. 진주에서 생활권이 같다고 주장하는데, 전 세계를 봐도 생활권과 행정권이 일치되는 곳 별로 없다. 통합에 따른 갈등만 커질 수 있다. 창마진은 그나마 연담도시로서, 시내버스가 단일노선으로 운행되고 요금도 단일화 돼 있는 등 어느 곳보다 통합조건이 좋은 편이다. 그럼에도 현재 분란이 심하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

조 사무처장은 만에 하나 통합으로 갈 경우 두 가지 원칙을 꼭 지킬 것을 당부했다. 반드시 주민투표로 통합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과 시 명칭, 청사 위치 등 갈등요인이 있는 것은 사전의제로 삼아 미리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창마진 통합에 마산시가 적극적이었다면 반대 목소리가 가장 컸던 곳은 진해시였다. 지금도 진해시되찾기운동을 벌이는 등 창마진 분리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 운동의 중심에 있는 사람 중 하나가 ‘희망진해사람들’의 조광호 대표다.

▲ 진해시 되찾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희망진해사람들 조광호 대표
그는 강제통합무효진해시되찾기시민연대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창마진 통합 이후 가장 변화된 점을 물었다.

“통합 후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집값상승이다. 1억 원 하던 전세가가 1억9000만 원에 이르고, 월세 10~20만 원 짜리도 30만 원이 예사다. 그만큼 거래가 늘었기 때문이라기보다 부동산업체들이 억지로 띄운 측면도 있다. 집 없는 서민들만 더 힘들어졌다.”

조 대표는 “통합 이후 모든 게 창원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지역민들이 느끼는 소외감이 무척 크다”고 말했다. 또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줘서 인쇄업이 거의 몰락했으며, 영업지역 구분이 없어진 택시업계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광고게시대까지 창원과 마산 광고물로 채워지면서 “현수막 하나 제때 걸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통합 효과는 작고 후유증은 크다”

반면 진해주민들이 기대했던 교육문제는 지금까지 풀리지 않고 있단다. 창마진 통합이 이뤄질 경우 고교학군도 통합될 것이란 이야기에 그나마 일부 시민들이 기대감을 가졌는데, 창원 쪽의 반대로 아직 아무 것도 이뤄진 게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공요금을 창원지역 수준에 맞추다보니 하수도요금이 40%, 쓰레기봉투 값이 27%나 올랐단다.

▲ '강제통합 무효 진해시 되찾기 시민연대'가 진해지역민들에게 나눠주는 홍보물
이처럼 창마진 통합 이후 시민들이 느끼는 불만이 커지다 보니 행정통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었다고 한다. 따라서 시민들의 이런 정서를 바탕으로 진해시 되찾기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또 다가온 총선과 대선에서도 이 문제가 핵심 의제가 될 것임을 전망했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통합창원시 출범 1년을 넘기면서 옛 마산시와 진해시를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 지역에 비해 옛 창원시 주민들은 불만이 덜한 걸까?

정답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창원지역민들은 마산과 진해의 사회기반시설 조성을 위해 자신들의 세금이 쓰이고 있음을 ‘역차별’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재정자립도가 높기에 통합이 되지 않았다면 옛 창원을 발전시키는 일에 예산이 더 돌아갔을 것이란 후회다.

이런 가운데 창원시민단체협의회는 통합 명분으로 내세운 ‘주민생활 편의와 행정효율성의 증대’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비판하고 나섰다. 인구 100만 명에 구청이 두세 개면 충분할 텐데 다섯 개나 만들어 행정서비스 비용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지적이다.

▲ 진해사람들은 행정통합으로 현수막 하나 내 걸기도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통합에 따른 효과도 뻥튀기 됐다는 주장이다. 행안부가 2009년 당시 내놓은 ‘창마진 통합효과분석’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 규모 조정 효과 1358억 원, 선거비용 및 운영비용 감축효과 36억 원, 중복시설 감소효과 503억 원, 중복 지역축제 감소효과 71억 원 등 10년 동안 2206억 원의 비용절감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별법에 따라 10년간 공무원의 구조조정 등이 금지되므로 통합효과는 크게 줄어든다는 것. 이와 관련해 이종엽 경남도의원은 “통합효과는 10년간 107억 원에 불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합창원시 출범 이후 가장 큰 암초는 뭐니 뭐니 해도 ‘새 청사를 어디에 둘 것인가’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당초 ‘통합준비위원회’에서 명확하게 짚고 넘어갔어야 했음에도 시 명칭은 ‘창원시’로 정한 반면 청사 위치는 결정하지 못하면서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옛 창원 마산 진해 세 지역민들 모두 통합청사가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주민들을 대표해 창원시의회에 나가 있는 시의원들은 이 문제에 사실상 정치 생명을 걸었다. 국회의원들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통합 후유증으로 극한 대립을 겪고 있는 창원시의회
“창마진, 다시 갈라서자”

따라서 최근 창원시의회에서 이를 둘러싼 갈등은 극에 달했고, 새해 예산안 처리까지 볼모로 잡았다. 특히 지난 11월 4일에는 청사 소재지를 빨리 결정하자는 ‘통합 창원시 청사 소재지 조기확정 촉구 결의안’과, 차라리 예전처럼 분리하자는 ‘통합 창원시를 구 3개 시로 분리 촉구 건의안’이 시의회에서 동시에 가결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이는 창마진 통합이 주민들의 자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권의 강제통합이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이후에도 창원시의회는 창원출신, 마산출신, 진해출신 의원들로 쪼개져 이른 바 ‘몸싸움’과 ‘충돌’, ‘저지’ 등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일부 의원들은 ‘눈물의 삭발식’을 갖기도 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창원시의 통합청사 위치를 둘러싼 갈등.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은 창마진 통합준비위 시절, 통합시 청사소재지 1순위로 ‘진해 (구)육군대학 부지’와 ‘마산 종합운동장 부지’를 정해 놓았다는 점이다. ‘창원 제39사단 부지’는 2순위였다.

▲ 행정통합, 사천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결국 통합청사 소재지를 두고 협의는 했으나 애매하게 처리함으로써 오늘의 갈등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통합준비위가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애매하게 처리한 이유는 뭘까?

이는 당시 행정통합을 부채질하던 행안부가 각종 인센티브를 내 걸어 놓고는 시간으로 압박했던 것과 관계가 깊다. 당시 통합준비위에 참여했던 시의원들이 이와 관련해 때늦은 후회를 하는 이야기가 종종 언론에 비친다.

만약 그 당시에 통합청사를 어디에 둘 것인지 분명한 결정을 내렸다면 오늘의 극한 대립과 갈등은 분명 없을 터다. 나아가 역설적으로 당시에 이 문제를 매듭지으려 했다면, 지금의 통합창원시는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통합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이른바 선진국의 사례처럼 오랜 시간을 두고 차분한 토론을 이어가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통합’에 관심 있는 지자체라면 새겨볼 대목이다.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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