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회비 반환 소식에 22년 전 학창시절 기억을 더듬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월 27일 “기성회비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함에 따라 전국의 국공립대 대학이 소용돌이에 빠진 모습이다.

지금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뿐 아니라 졸업생들까지 기성회비 반환 소송에 줄을 이을 전망이어서,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중요한 정치이슈로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벌써부터 기성회비 반환의 주체는 누군지, 당장 올해 등록금은 어찌 해야 하는지, 향후 교육당국이 내놓을 대책은 뭔지 등을 놓고 여론의 반응이 뜨겁다.

이번 소송에는 전국의 8개 국립대 4219명의 학생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 기성회비 반환 소식을 접하니, 20년 남짓 전에 있었던 옛 기억 하나가 머리를 스친다. ‘총장실 점거’.

사실 1990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1997년 졸업하는 순간까지 학생들과 대학본부 사이에 놓인 갈등의 중요한 축은 ‘등록금’ 문제였다. 그리고 이 등록금 가운데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기성회비’가 갈등의 핵심이었다.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률 인하’를 요구하면서 늘 ‘기성회비 인하’를 요구했고, 이와 병행해 ‘기성회비 사용내역 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졸업하는 순간까지 대학 측이 속 시원히 사용내역을 공개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수십, 수백 억에 달하는 기성회비의 사용내역을 달랑 종이 한 장에 적어주며 “자, 봐라” 했던 적은 있었다.

어쨌거나 이 기성회비를 둘러싼 갈등이 가장 컸던 해가 바로 1990년이다. 그해는 정부가 ‘대학등록금 자율화’ 조치를 취한 이듬해로, 등록금 자율화는 곧 기성회비 자율화를 의미했고, 대규모 인상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전국의 각 대학에서 기성회비 인하 싸움이 치열하게 일어났다.

당시 내가 다녔던 대학은 등록금을 8.9% 인상한 상태였다. 이 가운데 기성회비 인상률은 9.5%로 전체 등록금 인상을 주도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기성회비 사용내역 공개를 강하게 요구했고, 이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학본부의 일부 사무실을 점거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3명이 제적, 7명이 무기정학의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기억 속의 ‘총장실 점거’ 사건은 이 징계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유를 꼬집어 들자면 ‘언론탄압’이 적절해 보인다. 총장실 점거에 나선 학생들은 당연히 대학 내 신문사나 방송국 등 언론사 소속이었다.

▲ 기성회비와 관련해 당시 논란을 일으켰던 시의 일부다. 1990년 3월에 발행된 모 대학 신문.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대학본부 측과 학생회의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총학생회는 3월 15일 출범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두 명의 학생이 학교 측의 징계와 등록금인상 등에 항의하며 손가락을 잘랐던 일은 기성회비를 둘러싼 갈등이 얼마나 컸는지 잘 보여준다.

이 출범식에서 시가 한 편 낭독되었는데, ‘가좌를 사수하리라’라는 제목의 시였다. 여기서 말하는 ‘가좌’는 대학교가 위치한 지명이다.

이 시는 대학 신문에도 실렸다. 그러자 대학총장이 발끈했다. 시의 일부가 총장 자신과 대학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관련자 처벌과 신문발행 중단을 지시한 것이다. 이에 신문사뿐 아니라 대학 내 언론인들이 함께 반발하면서 ‘총장실 점거’로 이어졌던 사건이다. 결국 이 사태는 언론사를 담당하는 주간교수와 지도교수, 그리고 신문사 편집국장이 동시에 사퇴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렇다면 총장을 발끈하게 만들었던 그 시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시가 긴 탓에 대학 측이 문제 삼았던 일부분만 소개한다.

"(전략)교육세까지 내고 있으면서 그 혜택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갔는지
오르는 기성회비는 또한 누구를 위해 쓰였는지
안기부에 달마다 상납한 돈과
경찰들 뒷주머니에 찔러진 돈이 과연
누구의 피땀이었기에 총장의 어깨만 올라갔는지요(후략)"

기성회비의 일부가 지금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안기부와 경찰들에게 뒷돈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을 시가 언급하고 있으니, 사실 여부를 떠나 대학총장의 얼굴이 붉어졌으리란 건 미뤄 짐작 가능하다.

돌이켜보면, 학생들이 그토록 원하던 기성회비 사용내역을 끝까지 비밀에 부치면서, 이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제적까지 시키는 마당에, 기성회비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학생들이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가능한 일 아닐까.

또 시를 쓴 당사자에겐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시를 신문에 실었다는 이유로 편집책임자를 징계하고 신문발행을 중단시킨 것은 지금 생각해도 ‘언론탄압’이라 할만하다. 행여 시에서 언급된 내용이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불편한 진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학생들에 대한 대규모 징계와 일부 학생들의 자해, 그리고 신문발행 중단과 총장실 점거까지, 일련의 사태는 기성회비에서 출발했다. 기성회비를 둘러싼 논란은 이후에도 줄곧 이어졌지만 2001년에 또 다시 학생 3명이 제적당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을 보면 뚜렷한 해결점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후배들은 이 기성회비 논란을 사법부로 가져갔다. 국공립대학들이 항소 의지를 밝히고 있기에 최종 판단이 어떨지는 미지수지만, 현재로선 대학생들의 오랜 싸움이 결실을 맺는 것처럼 보인다. 오래 전 대학을 졸업한 많은 선배들이 ‘내 일’처럼 기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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