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맛집기행>'못 생겨도 맛은 좋아~' 아귀 요리 진수

명강아구찜의 별미 '아구 내장탕'
정월 대보름이 지나 바다로 나간 어선들이 싱싱한 생선들을 삼천포항에 많이 부렸다는 소문을 귓전으로 듣고 아귀찜 집을 찾아 나섰다. 우리가 오늘 찾을 집 상호는 ‘명강아구찜’이다. 삼천포 동동의 음식점 골목에 위치하고 있는데 골목에 있는 여러 음식점들에 불이 꺼져있다. 지역 경제가 어렵다는 신호일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아구, 혹은 아쿠라고도 하지만 표준어로는 아귀다.
아귀는 못생긴 물고기이다. 넓적한 몸체에 터무니없이 큰 머리와 날카로운 이빨을 숨기지도 않고 길게 찢어진 입은 그야말로 괴물이다. 생긴 꼴이 이러니 옛 사람들은 먹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예전에는 다른 생선도 풍부했지만 이 이상한 물고기를 요리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어부들의 그물에 아귀가 걸려들기라도 하면 재수 없는 흉물을 만난 것처럼 다시 바다에 던져 버리곤 했단다. 아귀가 물에 떨어지면서 '텀벙' 소리가 난다 해서 아귀를 두고 지역에 따라서 '물텀벙'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아마도 해방 후 부터가 아니었을까.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서 사람들이 과거에는 버리던 물고기를 갖은 방법으로 요리하기 시작했다. 바다 속에서 쥐 울음소리를 내고 껍질이 가죽 같이 질겨 거름에나 사용했던 쥐치(오죽 했으면 쥐고기라 했을까)를 쥐포로 만들어 즐겨 먹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아구 내장탕과 함께 밑반찬이 맛깔스럽다.
아귀는 말리거나 생 아귀로 탕이나 찜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데 그 맛이 괄시 못할 진미라서 이제는 바닷가 토속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역사는 그다지 오래 된 것은 아닌 셈이다.

메뉴 판에는 아구찜, 아구수육, 아구맑은탕, 아구내장 매운탕 등이 있는데 우리는 몇 가지 요리 중에서 ‘내장 매운탕’을 선택했다.

요즘에는 냉동 아귀가 나오니 연중 아귀 요리를 먹지만, 생 아귀는 12월부터 2월까지가 제 철이다. 이제 입춘도 지나고, 정월 보름도 지났으니, 제대로 된 제철 생 아귀 요리도 이제 끝물이다. 몇 가지 밑반찬이 나왔는데 흔히 괜찮은 식당이 다 그러하듯이 하나같이 맛깔스럽다. 굴깍두기, 파래무침, 미역나물, 어묵볶음이 한 접시에 나오고 따로 생선부침이 나왔는데, 이 지역에서는 바다 대구, 혹은 바다 놀래미라 부르는 생선살을 발라서 부침을 한 것이다. 맛이 담백하고 고소해서 누군가가 한 접시 더 달라 했더니 앞에 손님들이 너무 많이 왔다가서 다 떨어졌단다.

‘명강아구찜’ 가게를 꾸려 온지가 올해로 15년이 된 강인숙 사장.
음식점 주인인 강인숙(52) 씨가 ‘명강아구찜’ 가게를 꾸려 온지가 올해로 15년이 되었다.
그 세월 사이에 집도 세 차례 옮기고, 현재 있는 가게는 집을 사서 새로 지었단다. 식당을 하면서 큼직한 집도 짓고 자식 농사도 잘 했으면 성공한 셈일 것이다. 금년에 대학에 입학한다는 잘생긴 청년이 음식심부름을 하는데 아들이라고 했다.

주문한 아귀매운탕이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얹혀 나왔다. 아귀탕의 주재료는 아귀 애(간)와 대창인데, 워낙 애가 기름져서 꼬리와 뼈가 많은 머리 부분도 함께 끓여 나온다. 그래야 개운한 맛이 더해지는 것이다. 애는 고소하기 그지없고 대창은 담백하면서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주방에서 이미 끓여 왔기에 상위에서는 약하게 끓이면서 먹으면 되는데, 그 풍모가 좀 색다르다. 붉은 국물위에 무슨 가루가 들어있는 것이다. 국물 첫술에 느껴지는 입맛은 묘하다. 마치 민물메기탕을 먹는 듯 한 느낌이다. 그러면서 달콤한 맛이 나오는 것이 독특했다.

강 사장에게 물어보니 그 이유를 알듯했다. 우선 매운탕의 매운 맛을 내는 고춧가루는 고추장을 만들 때 사용되는 아주 부드러운 고춧가루이다. 곱게 간 고춧가루는 탁한 맛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탕에 뿌린 가루는 ‘방아’였다. 방아를 말려서 분말로 내서 탕을 끓인 후에 얹어 나왔는데 이 방아가루와 고춧가루가 합성되어 묘한 맛을 내었던 것이다.

명강아구찜의 '아구 내장탕'에는 분말의 방아가 듬뿍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요리하지 않았다. 먹지도 않았던 생선인데 전래의 요리비법 같은 것이 있을 리 있겠는가? 주인 내외가 몇 년에 걸쳐 요리조리 요리해 보고 가장 적절한 양념 재료와 배합의 황금배율을 찾아 낸 것이다. 그야말로 숱한 노력 끝에 탄생한 창조물이다.

“ 방아를 날 것으로 쓰지 않고 굳이 말려 가루를 만들어 사용합니까?”
“ 그렇게도 해 봤는데 말려 분말로 해 보니 그게 제일 맛이 나더라고요.” 하는 식이다.

그런데 ‘방아’란 향신료는 서부 경남 지역에서만 즐겨 사용되는 강한 향을 지닌 이파리 식물이다. 처음 맛 본 사람은 마치 ‘약 냄새’가 난다면 질색하기도 한다. 그래서 강 사장은 안면 없는 타지 손님이 들어와서 매운탕을 시키면 방아를 먹는지를 꼭 물어본다고 했다.

방아는 산청 같은 산악지대에서 흔히 사용하는 ‘산초’, ‘제피’와도 맛과 향이 또 다르다. 우리 지역 사람들은 방아를 아무 음식에나 다 넣어 먹긴 한다. 고추부침을 할 때도 넣고, 된장찌개를 끓일 때나, 보신탕을 먹을 때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나 민물 매운탕일 때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바다 생선인 아귀매운탕에 방아가 들어 있을 줄이야!

이 국물 맛을 보는 순간 ‘중독성’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중독이란 것이 어디 알코올, 담배에만 있는가? 음식에도 있는 것이다. 식당이 이사해도 옮겨간 곳을 따라가며 꾸역꾸역 찾아 드는 식객들이 왜 그렇게 많을 것인가? 다 끌어들이는 중독성 때문이다. 어쩐지 다음에도 아귀탕 생각이 나면 이 집으로 저절로 발길을 옮길 것 같았다.

명강아구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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