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연루 청소년과 경찰관의 축구시합, '몸으로 느끼다'

17일 토요일 오전11시. 삼천포공설운동장 보조 축구경기장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아주 특별한 축구경기를 펼칠 선수들이였다.

먼저 나와 빵과 음료수를 챙기고, 몸풀기에 들어간 쪽은 경찰관들이다. 볼 트래핑을 해보고, 슛도 날려보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어떤 이는 “몇 년 만에 축구공 처음 만져본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반대로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은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건들거리기도 하는 것 같은 게 여유가 묻어난다. 잠깐 움직이는 모습이 제법 날래다. 몇몇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빨리 오라고 다그친다. 축구시합 장소를 잘못 전해들은 몇몇이 다른 곳에서 급히 오고 있는 모양이다.

17일 사천경찰서 수사과 직원들과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천의 청소년들이 반반씩 섞어 팀을 나누고, 축구시합을 벌였다.
새벽까지 비를 뿌리며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 햇살이 드문드문 내려 비출 때쯤 선수들이 모두 모였다. 오늘은 사천경찰서 수사과 직원들과 ‘조폭 뺨치는 학원폭력’(?)이라며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천의 청소년들이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경찰관과 청소년들을 반반씩 섞어 팀을 나누고 공을 찼다. 날랜 청소년들을 따라잡기가 여간 힘들어 뵈지 않았지만 ‘자존심’이라도 지켜야겠다는 듯 경찰관들도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거친 몸싸움은 없었고, 대신 떠들썩한 웃음과 고함소리가 운동장을 채웠다.

전반 20분 경기가 끝나니 경찰관들은 땀으로 범벅이다. 그런데 청소년들은 얼굴이 가슬가슬한 것이, 마치 ‘아직 몸 풀기도 안 끝났는데요!’ 하는 것 같다. 이 모습을 보고 경찰관들은 청소년들을 잔뜩 치켜세웠다.

“야, 너그들 와 이리 잘 뛰노. 날마다 공만 차나? 선수 해도 되겠는데!”

그러자 청소년들의 표정이 싱글거린다.

“다음 달에 축구대회가 있다 아입니꺼. 그래서 우리끼리 모여서 연습 좀 하고 있어예.”

4월에 교육장배 축구대회가 있는데, 학교별 대항이 아니어서 학교가 달라도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팀을 이루면 참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내심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눈치다.

서로 골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벌였는데, 스코어를 매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처음부터 승부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눈에 띄는 점은 경찰관들과 청소년들의 대화가 무척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인 양 느껴질 정도다. 특히 경찰관들은 열댓 명 되는 아이들의 이름을 정확히 구분해 부르고 있었다.

후반전 경기엔 청소년들의 활약이 더욱 돋보였다. 서로 골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벌였는데, 스코어를 매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처음부터 승부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함께 경기를 뛴 김대규 수사과장은 “승패는 의미가 없죠. 다만 이렇게 몸으로 부대끼면서 ‘우리도 너그들 마음을 조금은 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이날 축구경기의 의미를 전했다.

이날 행사를 준비한 이동근 경위도 “경찰과 이렇게 어울리다보면 아이들이 비슷한 일을 다시 저지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오늘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서 좋다”고 말했다.

축구경기가 끝나자 이번에는 문화상품권이 걸린 재미난 놀이로 이어졌다. 작고 가벼운 이쑤시개를 누가 더 멀리 던지느냐 하는 놀이다. 청소년들은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허공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경찰관과 청소년들이 점심을 함께 했다.
그리고 때마침 도착한 짜장면과 탕수육,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경찰관들과 청소년들은 운동장 가장자리에 둘러 앉아 점심을 함께 했다. 경찰관들은 ‘다음에 불미스런 일로 다시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당부는 굳이 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달 있을 축구대회에서 “실력 발휘를 맘껏 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앞서 사천경찰은 지난 14일 ‘폭력조직을 모방한 학교 폭력 사건’을 수사해 그 결과를 언론에 발표했다. 이 사건에는 모두 30명이 연루됐는데, 우두머리 격인 1명은 구속됐고, 사안이 경미한 9명은 불입건 처리됐다. 또 3명 정도가 추가 구속될 수 있다는 전망을 경찰은 내놓았다.

악수를 나누고 있는 경찰관과 청소년들.
이날 경찰관들과 공을 찬 청소년들은 모두 이 사건에 연루됐음이다. 그러나 이날 만난 청소년들은 ‘폭력조직’ 어쩌고 하는 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축구를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10대였다. 아직은 아끼고 보살펴야 할 청소년들, 그 몫이 특정한 누구에게만 있는 것은 분명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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