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맛집기행>샐러드 대신 나물, 백김치에 사골탕.. 독특한 상차림에 '눈길'

미풍갈매기 식당. 돼지고기 구이집이다. 돼지고기 구이라면 흔히 삼겹살을 생각한다. 또 양념갈비나 주물럭을 연상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미풍갈매기’는 다르다.

사천읍 미풍갈매기의 주메뉴 '갈매기살'과 '항정살'. 사진에 흰색이 항정살이다.
흔한 삼겹살이나 갈비는 메뉴판에 아예 없다. 대신 등장하는 것이 '갈매기살'과 '항정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두 부위의 살코기가 생소할 것이다. 항정살은 앞다리와 목 사이에 있는 살인데 색깔은 흰색인데 지방 분포도가 높다. 그래서인지 고소한 맛이 강하다. 돼지고기 기름은 그 자체가 양념이니까.

갈매기살은 갈비 밑에 붙은 살인데 쇠고기로 치면 제비추리 정도 되겠다. 기름기가 없어서 담백하다. 따로 주문하지 않으면 이 두 부위의 살을 접시에 공평하게 채려 준다. 그런데 한 부위만 달라고 하면 그 부위만 준다. 나 같은 경우는 항정살을 더 선호한다.

미풍갈매기에는 흔한 삼겹살이나 갈비는 메뉴판에 아예 없다. 대신 항정살과 갈매기살로 승부한다.
고기를 한 접시 정도 구워 먹을라치면 국물이 나온다. 돼지 등뼈를 듬뿍 넣어 8시간을 푹 고은 뿌연 곰탕이다. 어찌나 진한지 뜨거운 국물을 ‘후 후’ 불어 마시고나면 입에 곰탕 국물이 ‘쩍 쩍’ 달라붙는다. 이 국물에 밥을 말고 백김치를 썩 썩 찢어 얹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요기가 된다. 알게 모르게 이 사골 탕이 주당들 사이에 인기가 있다. 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은 멀리 광주 송정리 떡갈빗집에서 전수 받았단다.

뽀얀 곰탕국물이 고기와 함께 나온다.
시원한 물김치와 나물도 일품이다.
이 식당의 상차림에는 다른 집과 색다른 구석이 제법 있다. 고기에 채소와 파 무침, 상추, 고추가 따라 나오는 것은 다른 업소와 진배없다. 여기에 상마다 백김치를 한 포기씩 양푼에 담아낸다. 더 달라고 해도 그다지 눈치 하는 기색도 없다. 고기를 한 점 입에 넣고 김치를 큼직하게 찢어 먹으면 시원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또 엉뚱하게도 나물이 수북이 접시에 담겨 나온다. 고기 집에서 나물을 곁들여 먹는 것도 색다르다. 느끼한 고기 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야채샐러드보다는 한국 사람에게는 나물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단다. 여기에 사골탕까지 나오니 우선 식단이 푸짐하다.

고기를 굽고 있는 조영심 사장.
조영심(51세) 사장은 사천 구량 출신이다.
부산에서 직장 생활 하다 호남 출신 송영철(54세) 씨를 만났다. 송 사장은 장가들러 신부집에 왔다가 IMF를 맞는 바람에 그냥 주저앉아 이제는 사천인이 되어 버렸다. 부인 조 사장의 특기도 살릴 겸, 모두가 힘든 때, 푸짐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음식점을 하자고 작정했단다. 조 사장은 음식 솜씨가 남달라서 일찍이 부산에서 일식당을 하는 외가에서 기본을 익히고, 스스로 곱창집도 운영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15년이다.

IMF 당시 서울 강남의 졸부들은 자기들끼리 술을 마실 때 ‘이대로!’라고 건배를 했다고 했다. IMF로 넘어가는 중소기업이나 생계에 쫓겨 내어 놓은 서민들의 땅이나 집을 싼값으로 후려쳐 먹은 덕분에 '떼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천민자본주의이고 부자들이 존경 받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종류의 인간들 때문이다.

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모든 서민들에게 고통과 가난만을 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 두 부부는 시청 앞에 자리를 잡고 시청 공무원들을 주 고객으로 장사를 시작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제 시청이 통합 청사로 옮겨가 버려 많은 단골들이 떠난 셈이지만, 여전히 성황리에 장사가 되는 것을 보니 자리를 잡은 셈이고, 아직도 과거의 시청 직원들이 자주 찾는다고 했다.

“어머, 요즈음 왜 그렇게 오시지 않았어요? 햇수로 2년이 되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교직을 퇴직하기 전에 직원들과 몇 번 온 이후론 그다지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작년 8월에 학교를 떠났으니 채 1년은 되지 않았지만 햇수로는 2년이 맞다. 조 사장은 아마 내 직장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손님들이 밀어 닥치면 남자 사장인 송 사장은 부엌에서 고기를 다루고 조 사장이 종업원들과 식당일을 본다. 워낙 바쁘게 움직이기에 조 사장은 식객들과 말을 나눌 여유가 없어 보여서 변변한 농담 한 번 건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골이 아닌데도 기억을 하니 역시 영업하는 눈썰미가 있다. 먼저 말을 걸어 온 김에 나도 덕담을 한다.

“사장님은 그 사이에 더 젊어졌소. 요즈음 좋은 일이 있나요?”

일행 중에 누가 ‘사장님이 밸리 댄스를 열심히 한데요.’하면서 웃었다. 조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밸리 댄스 예찬론’을 펼친다.

“너무 너무 좋아요. 매일 댄스 운동하지 않으면 좀이 막 쑤시고요. 전에 허리 아픈 것도 다 없어졌고요. 1년 되었는데 이제 배에도 식스 팩이 생겼다니까요.”

조영심 사장.
활기가 넘쳐흐른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운동을 건강에 제일 효과가 있는 운동이라 극찬한다. 마라톤맨들은 달리기에 중독되고, 검도를 시작한 사람은 검에 심취하고, 바디빌딩을 하는 사람은 역시 헬스클럽이 제일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다들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운동하지 않았던 사람이 운동을 하게 되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활력소란 것을 온 몸으로 각인하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식객들이 먹는 것은 단순히 음식만이 아니다. 그 음식을 만든 사람들의 기운도 함께 섭취하는 것이다. 등산 매니아인 남편과 밸리댄스 아내가 함께 만들어 내어 놓는 활기찬 음식을 흰머리가 부쩍 많아진 아내와 함께 가끔씩 찾아 먹어야겠다. 요즈음같이 흐르는 세월을 몸으로 느낄 때 특히 그렇다.

사천읍 미풍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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