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대로 세계일주>12. "사람 냄새 나는 시장이 좋아"

▲ * 좌측 위 :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에서 만난 터키인들의 대표 간식 '시미트'를 파는 아저씨.* 촤측 아래 : 바르셀로나 시장에는 나 같은 홀로 다니는 여행자도 쉽게 사 먹을 수 있도록 컵에 조각과일을 판다.* 우측 위 : 터키에서는 착한 가격의 석류 주스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우측 아래 : '이집선 바자르'에서 본 터키 여인들.
여행 중 가장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장소는 위대한 유적지도, 아름다운 미술 작품도 아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그 나라의 시장이다.

때문에 새로운 나라나 도시에 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도 그곳의 시장을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네와 다른 것을 발견하면 호기심에 가득한 마음으로 사보고, 또 우리 것과 너무나 비슷해 보이는 것을 발견해도 반가운 마음에 덥석 먹어본다.

우리 음식에 대한 향수도 달래고, 또 우리 음식과 무엇이 다른지도 나름 구별해 보고, 맛있고, 저렴하기까지 하면 그 사소함에 행복해 하며, 자꾸자꾸 간다.

신기할 정도로 다행스러운 건 평생 그토록 예민했던 내 대장이 페루, 볼리비아,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의 낯선 나라 길거리 음식에 관대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페루 뿌노의 시장에선 길거리에 현지인들과 앉아
우리네 곱창/닭발 볶음, 닭백숙, 육개장과 유사한 음식도 먹고, 삐삭시장에선 피망에 만두 속을 넣은 것이
우리나라 고추튀김과 너무나 그 맛이 비슷한 음식을 발견하고, 그 맛에 취해 다른 구경은 다 무시하고 시장에만 있기도 했다.

▲ * 좌측 : 페루 '삐삭' 시장의 모습.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고추튀김과 매우 흡사한 음식을 만날 수 있었다.* 우측 : 페루에서는 사진과 같은 100% 천연 오렌지 쥬스를 600원이란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었다.
▲ * 위 : 페루 뿌노 전통시장에서 만난 닭발 볶음.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먹거리와 너무 비슷한 내장볶음과 닭백숙, 도너츠 튀김까지 먹을 수 있었다.* 아래 : 페루 꾸스코 시내에서 먹은 '아도보'. 우리나라 김치찌개와 감자탕의 중간맛인 이 음식으로 인해 장기여행자의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 중 온갖 향신료와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든 각종 화려한 문양의 각종 그릇과 장식, 고소하고 착한 가격의 치즈가 가득했던 터키 이스탄불의 그랜드/이집선 바자르와 꿀보다 더 달았던 포도와 석류 등의 과일이
한소쿠리에 800원 밖에 하지 않았던 네비쉐히르 시장, 싱싱한 해산물로 가득 차 있던 바르셀로나의 산 요셉 시장과 시애틀의 퍼블릭 마켓, 사람보다 소가 더 많다는 아르헨티나의 명성답게 화려한 모양의 예쁜 가죽제품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던 부에노아이레스의 산뗄모 주말시장은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장소이다.

특히 터키 괴뢰메에 머물던 중 갔던 네비쉐히르 장터를 갈 때의 일이었다.
버스에서 시장가는 길을 물으니 다들 영어가 되지 않는지 멋쩍은 웃음만 지으시는데, 잠시 기다리니 인상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마켓? 나도 거기 가는 길이니 나 따라 와”라고 중급 수준의 영어로 응대해 주신다.

당시 터키 여행 중에 만난 미애, 지은, 승연 등 세 명의 예쁜 처자들과 할아버지를 따라 시장 구경에 나섰는데, 우리가 뭘 사고 싶은지 물어보시고 직접 싱싱한 것으로 골라 주시기까지 한다.

▲ 아르헨티나 부에노아이레스의 유명한 '산뗄모' 주말시장에서는 소가 사람 숫자보다 많은 나라답게 다양한 가죽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고마운 마음에 감사인사를 하고 헤어져 돌아오는데, 여자들이다 보니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 한다’고 자주 놀리던 우리 신랑의 말처럼 유난히 많이 있는 금방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이 가게, 저 가게를 구경하고 있는데 또 그 분을 만났다. 안 가고 뭐하냐는 물음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나 말고 나머지 친구들이 곧 귀국하는데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사고 싶어 한다고 했더니,
관광객들에겐 비쌀 수 있으니 같은 고향 괴레메 출신이 하는 가게로 안내해 주셨다.

과연 그 가게의 가격은 지금까지의 가게 보다 저렴했다.
거기다 고향 친구가 데려온 귀한 손님이라고 식당에서 밥까지 사 주셨다.

장기 여행자이고 차기 여행지에 남미가 있어 반짝거리는거 사면 손가락 잘릴 수도 있다며 애써 지름신을 참은 나를 제외하고 기분 좋은 쇼핑을 한 처자들과 돌아오는 버스에서 한바탕 기분 좋은 수다를 떨고 있는데, 그 모습을 웃으며 보시던 할아버지께서 괴레메에 머무는 동안 더 하고 싶은 건 없는지 물으셨다.

날씨가 추워 따뜻한 온천이 하고 싶다고 했더니 본인도 오늘 유쾌한 처자들 때문에 너무 재미있었다며 원한다면 본인이 데려다 주신단다.

▲ 아르헨티나 '산뗄모' 시장의 거리 상인들.
▲ 페루 '뿌노' 시장에서 현지 주민들과 앉아서 찹살 도너츠를 맛있게 먹고 있는 나. 줄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저 도너츠 맛을 떠올리니 괜히 입에 군침이 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배려는 우리의 또 다른 천사인 볼칸의 더 멋진 제안으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가 머물던 동굴 호스텔의 매니저인 볼칸은 우리를 위해 기암괴석이 가득한 계곡에서 한밤중에 모닥불과 와인 파티를 열어 줄 만큼 수다쟁이인 여인 4명과 친해져 있던 터였다.

너무 천사 같이 친절한 할아버지를 만났다는 우리의 무용담을 듣던 볼칸이 "뭐 하러 그곳으로 온천을 가. 차라리 카라하이트 5성급 호텔로 가. 거기 가면 훨씬 시설 좋은 곳에서 무제한 온천이랑 하루 2끼 호텔식 뷔페를 할 수 있어. 내가 여행사를 겸하고 있으니 호스텔에 묵는 가격으로 호텔에서 머물도록 협조해 줄게.” 라고 했다. 헐~!

귀가 얇은 우리는 바로 우리의 시장 천사 할아버지께 전화 드려 사정을 말하니 괜찮다며, 대신 괴뢰메에 다시 오면 언제든 연락하란다.
맘씨 좋은 할아버지의 종결자 같으신 분 같으니라고…….

안 그래도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나에게 더 깊은 관심을 만들어 주신 친절한 할아버지. 다시금 감사드리고, 보고 싶어요!

이 글은 김윤경 시민기자가 2010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13개월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여행기다. 그녀는 1997년 해군장교로 임관해 근무하다 2010년 11월에 소령으로 전역했으며, 지금은 보건교사로 일한다. 고향은 경남 진주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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