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덜 찼는데 추위는 겨울잠 부르고.. 에라, 낙엽을 이불삼아..

▲ 6차선 도로를 건너온 꽃뱀이 너무 높은 길어깨에 갈 길이 막혔다.
가을이 깊다. 기온은 내려가고.. 뭇 생명들은 따라 활동을 줄인다. 나무는 잎을 떨궈 내고, 추위를 견디기 힘든 동물이라면 겨울잠을 준비한다.

2012년 10월의 마지막 날. 운전 중 사천시청 앞 6차선 도로를 과감(?)하게 건너고 있는 뱀 한 마리를 발견했다. 제법 날쌘 모습. 하지만 '혹시 차에 치인 건 아닐까?' 궁금했다.

▲ 낙엽 속에 몸을 숨긴 꽃뱀, 유혈목이.
차를 세우고 오던 길을 거슬러 걸었다. 저만치 도로 가장자리 낙엽더미 속에서 뭔가 꼬물거렸다. 꽃뱀이었다. 다행히 차가 제 몸을 비킨 모양이다. 몸집은 40센티미터 가량으로 아직 새끼에 가깝다.

차에 놀라고 인기척에 놀란 꽃뱀. 몸을 한껏 웅크렸다가 줄행랑이다.

▲ 10월의 끝자락. 추위가 빨리 찾아왔다. 갈팡질팡 하는 꽃뱀.
하지만 달리 갈 곳이 없다. 도로를 벗어나려면 보도 위로 올라서야 하는데, 20센티미터 가량 되는 턱이 부담스럽다. '가다 서고'를 반복하며 몇 번이고 대가리를 쳐들어 보지만 곧 넘지 못할 벽임을 절감한다.

▲ 방향을 돌려보지만 길은 외길이다.
이젠 방향을 바꿨다. 한참을 가도 여전히 탈출구가 없는 길. 안쓰러웠다. 보도 위로 올려줬다. 그랬더니 ‘이때다’ 하고 보도블록 사이 틈새로 금세 몸을 숨겼다.

‘다시는 도로에 내려서지 말거라~!’

마음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 보도 위에 올라온 뱀이 얼른 몸을 숨긴다.
내가 본 꽃뱀은 달리 ‘유혈목이’라 부른다. 4~5월에 자주 볼 수 있고, 더위가 심해지면 모습을 감췄다가 9월 이후 모습을 자주 드러내는 뱀이다. 10월엔 겨울잠에 필요한 영양 보충하랴, 짝짓기 하랴 바쁘단다.

그런 꽃뱀이 10월의 마지막 날, 조금 일찍 불어 닥친 추위 앞에 몸을 피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니면 사냥을?

뭐였던 몸 보신 잘 해서 다가올 겨울 잘 나기를.. 그리고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이 있으니, 곧 '사람'이다!

▲ 날은 춥고 배는 고프고.. 인간이 만든 벽은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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