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대로 세계일주]24. 여행기 연재를 마무리하며①

▲ * 좌측 : 사람과 만든 풍경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 * 우측 위 : 남미 파타고니아 지역의 만년설을 품은 산 '엘 찰튼'. * 우측 아래 : 물의 도시 베네치아.
여행을 하면서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과 기준들이 무너짐을 느꼈다.

오랫동안 가톨릭 교인으로 살다가 남편을 만나 기독교로 개종한 후 같은 신을 믿지만 다른 종교적 교리들에 무엇이 맞는 것인지 몰라 갈팡질팡 했던 것처럼.

우선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내 개인적 성향과 사회적 성향이 일치하는 가운데 살아온 나는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회와 개인을 접하면서 헛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본 우선 그들은 늦은 시간에 상점에 문을 연다. 그리고 내 기준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게 상점의 문을 일찍 닫는다.

바로 옆 극장에서 늦게까지 영화가 상영되고 있어 영화가 끝날 시간까지 가게 문을 연다면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을 텐데도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며 은행도 아닌데 5시면 가게 문을 닫을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
항상 투입 되는 시간/자원/에너지 대비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효율성을 최상의 기준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무엇을 위한, 또 누구를 위한 효율성이었을까?
나의 행복과 상관없는 효율성이 어떻게 모든 것의 최고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 여행을 하는 동안 즐거움 중 하나는 세계 각국의 다양하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알던 카페는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기 위한 장소였다.
하지만 커피를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독보적인 브랜딩과 로스팅 기술로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리’나 ‘라바짜’ 같은 유명 커피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나라 이탈리아의 카페에선 카페는 느긋하게 앉아서 커피 마시는 장소가 아니라 아침 식사나 오후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 앙증맞을 정도로 작은 잔에 담긴 에소프레소던 카페라떼던 그 크기에 상관없이 훌쩍 마시고 바삐 그들의 일상 속으로 돌아가는 ‘찰나의 머무름’의 장소였다.

그리고 부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고, 레저용이라고만 생각했던 크루저(대형 요트)가 누군가에겐 집이 될 수 있음을 보았다.

▲ 여행 중 유럽이나 북미에서 주차장에 정박되어 있듯 수많은 요트들이 항구에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저 많은 요트들이 저렇게 빽빽하게 계류되어 있을까? "요트를 사고 운영할 정도로 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여행이 끝나갈 즈음 알게 되었다. 저렴하게 살기 위해 땅위의 집을 포기하고 요트에서 사는 사람도 많음을...
중미에서 본 소위 ‘보트 피플들’, 미국과 캐나다의 은퇴자인 이들은 생활물가가 저렴한 중미 해안가에 그들의 크루저를 영구(?) 정박해 두고, 그들 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레스토랑 식사를 즐기면서 나름 만족스런 마지막 삶을 살고 있었다. 연로하여 세일링을 할 힘도 없는 이들에게 크루저는 그냥 생활을 위한 ‘저렴한 집’ 일 뿐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세상에서 책 한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그건 그 사람이 그 책 한권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모든 걸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는 그의 편협함을 무서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편협함의 경계를 좁히고,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여행이란 책과 같다.
아니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할 수 있으니 책보다 더 생동감 넘치고 더 많은 걸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그러니 많은 이들이 여행을 하고 싶어 하고, 심지어 여행 중독자가 되는 것이다.

▲ 싫고 좋음이 분명했던 나를 이런 삶도 있고, 그럴 수도 있지 등의 회색분자로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여행을 다녀 온 후 학회에서 심리검사를 한 적이 있다.
여행 전 싫고 좋음이 명확한 성격이라 오지 선다형 물음에 ‘매우 그렇다’, ‘매우 그렇지 않다’라는 답변이 많았는데, 여행 후에는 ‘종종 그렇다’, ‘그렇다’, ‘종종 그렇지 않다’에 더 체크가 되었다.

그랬더니 우리나라 평균 내 연령대에 비해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으로 나왔다.
화끈한 의견의 소유자가 많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선 여행 후 ‘그럴 수도 있지’란 생각을 많이 갖게 된 일종의 회색분자인 나는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인 것이다. 헐~!

그래도 난 에너지가 부족한 것으로 나와도 세상과 사람에 대해 좀 더 포용적인 생각과 관점을 가지게 된 회색분자인 내가 좋다.

이 글은 김윤경 시민기자가 2010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13개월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여행기다. 그녀는 1997년 해군장교로 임관해 근무하다 2010년 11월에 소령으로 전역했으며, 지금은 보건교사로 일한다. 고향은 경남 진주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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