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맛집기행]방문 너머 바다가 빼꼼.. 도다리쑥국에 취하다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준다는 도다리 쑥국.
春來不似春이라.
춘분이 지났는데도 북쪽 산간 지방으로부터는 때 아닌 폭설 소식이 들린다. 그래서인지 따뜻한 남쪽 바닷가인 사천에도 물러가는 추위가 봄을 톡톡히 시새움하고 있다.
아침저녁 추위가 겨울 못지않아서 두툼한 겨울 외투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저녁이다.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준다는 도다리 쑥국을 맛보기 위해 용현면 선진리성 아래 선진마을에 있는 황토방 횟집을 찾았다. 작년 도올 선생이 우리 신문사 초청강연 차 왔을 때 점심을 대접했던 곳이다. 인공 조미료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선생의 특이 체질 때문에 고심하다 찾은 식당이다. 당시 생선 미역국을 대접했는데 도올 선생은 인공조미료에 오염되지 않은 이 집의 음식을 격찬했었다.

선진리성 바닷가에 위치한 황토방 횟집.
이 집은 이름 그대로 손님들을 맞는 방들이 다 황토로 만들어져 있다. 옛날식 기와집 구조인데 황토로 벽을 세웠다. 여닫이문을 열면 빠끔히 바다가 살짝 보인다.

쑥국에 앞서 회 한접시를 시켰다.
▲ 원래 회는 따뜻한 국물이 나오기 전에 먹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오늘의 주요 메뉴는 도다리 쑥국이지만 우선 생선회를 한 접시 시켰다.
원래 회는 따뜻한 국물이 나오기 전에 먹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접시에는 노래미, 우럭회가 푸짐하게 놓여 있다. 우리 지역에서는 회를 낼 때 회감 밑에 무채 같은 것들을 깔아 내지 않는다. 그만큼 회 인심이 좋다는 말일 것이다.

황토방횟집에서는 자연산 생선만 사용한다. 우선 회 맛부터 점검해 본다. 아침에 실려와 펄펄 뛰는 싱싱한 자연산 횟감의 쫄깃한 식감이 좋다.

“처음부터 자연산 회만 취급하셨어요?”
“아뇨, 처음에는 양식 고기도 같이 썼는데 언제부터인가 손님들이 자연산만 찾아서 그냥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자연산만 취급하고 있지요.”

황토방횟집 김효자 사장.
아내 김효자(55세)씨는 여기서 가까운 초전 생이고 남편인 문오갑(60세)사장은 바로 여기 선진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온 토박이다. 고향 집에서 가게를 꾸리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도 요즈음 같이 고향을 지키기 힘든 세태에서는 복이라면 복일 것이다. 매일 아침 삼천포항 자연산 어판장에 가서 생선을 떼어 온단다.

이 집에서는 회를 뜨는 이는 문 사장이고 반찬을 만들고 손님을 맞이하는 역할은 아내가 한다. 철저하게 분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들어 올 때 보니까 우리 상에 내 올 생선을 썰고 있다가 급히 손을 씻으면서 사람 좋은 웃음을 입에 물고 문 사장이 나온다. 전화로 예약을 해 놓고 가면 시간에 맞추어서 회를 장만한다. 그래서 갈 때 마다 문 사장의 젖은 손과 악수를 하곤 한다.

풀풀하게 살아 있는 쑥만 숨을 죽이면 바로 먹을 수 있다.
도다리 쑥국이 한 냄비씩 끓여져 나왔다.
이미 주방에서 한소끔 끓었기에 풀풀하게 살아 있는 쑥만 숨을 죽이면 바로 먹을 수 있다.
각 자 앞에 있는 그릇에 각자의 주걱으로 떠서 양에 맞추어 먹으면 되는 식이다.
접시에 여러 가지 찬이 나오는데 인색하게 보일 만큼 적은 양만 내 온다. 그러나 추가하면 싫은 내색 없이 달라는 대로 내 온다. 버리는 음식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우선 혀에 와 닿는 국물 첫맛은 단맛이다.

“단맛이 강하네요? 육수를 따로 쓰나요?”
“아니요. 우리 집에는 따로 육수는 사용하지 않고요. 무에 마늘을 많이 넣어요. 원래 마늘에 단맛이 많아요. 간은 집에서 담근 된장으로 맞추고요.”

‘달큰’한 맛이 일품인 도다리 쑥국.
무와 마늘에 된장의 맛이 어울려 내는 가볍지도 않고 그렇다고 투박하게 무겁지도 않은 단맛, 그래서 ‘덜큰’ 하다기 보다는 ‘달큰’한 맛이라고나 할까.
실제 연령보다 젊게 보이는 김 여사가 아무 꾸밈없이 이야기 한다.

“이제 쑥도 끝물이 되어 가죠?”
“그렇죠. 조금 더 지나면 쑥이 너무 자라서 쓴맛이 바치기에 쑥을 쓰지 않죠. 지금이 절정인 것 같아요. 참 향이 좋죠.”
“도다리가 알이 통통하게 밴 것 같은데요?”
“요즈음 도다리가 참 좋네요. ‘난 도다리’에요. 알도 배고 고니도 있지요? 깊은 맛이 나죠!”

쑥과 도다리가 어울려 봄의 향취를 전한다.
생선국에는 고니와 알이 들어 있어야 제대로 맛이 난다. 일종의 맛깔 나는 고명이다.

김 여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몇 숟갈을 더 먹어 보니 이제는 단 맛에 구수한맛이 더 한다. 입안에 도다리의 깔끔한 맛에 구수한 된장 맛과 은은한 쑥 향이 범벅이 되면서 바다의 맛과 들의 향이 한데 어울려 혀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하다.

반주로 마시는 무색무취한 소주마저 도다리 쑥국 향과 어울리니 독특한 주향(酒香)을 자아낸다.

오늘의 맛 집 탐방 스폰서를 자청한 경상대 김 교수는 연신 회도 맛있고 도다리 쑥국도 맛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 내려 온지 20년이 넘는데 그 사이에 입맛을 버려 놓았어요. 이제 고향에 가도 생선을 먹을 수가 없어요. 사천 생선에 입맛이 들어 버려서 말입니다. 하 하”

김 교수는 바다와는 거리가 한참 먼 충청북도 산골이 고향이다.

좋은 음식에는 좋은 벗들이 함께해야 맛이 더한 법. 밤은 어느 듯 깊어지고 동행들의 대화에서 웃음꽃이 피어나고 풍자에서 자아내는 향이 더 짙어진다. 봄 같지 않은 매서운 추위가 뺨을 찌르지만, 오는 봄을 어떻게 막을 수 있으랴! 눈앞에는 아직 피지도 않은 벚꽃이 아롱거리는 것을. 아무래도 읍내 주막에서 막걸리로 입가심을 해야 오늘 행사가 끝날 것 같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