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재의 음악놀이터]쥬세페 '4월'과 뮤지컬 캣츠의 '메모리'

한나라 때 초나라 출신의 왕소군(王昭君)이 내몽골, 오랑캐의 땅으로 강제로 시집가 맞이한 여름은 장안이 섭씨 40도를 넘나들 때 겨우 16도에 불과하고 아침, 저녁 가릴 것 없이 모질게 바람이 불어 어떤 시인이 읊었듯 땅에 붙은 키 작고 색깔 진한 ‘풀잎이 눕는’ 가을 날씨였을 테니 말 그대로 ‘春來不似春’이었겠지요.

술 좋아하는 이태백은 자기보다 천 오 백 년쯤 먼저 겪은 남의 일, 그것도 가녀린 여인의 처연한 상황을 어찌 그리도 잘 표현해냈는지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해마다 4월이 되면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토스티의 <4월>을 청아하고 투명한 스테파노의 목소리로 듣곤 하는데 올해 역시 ‘春來不似春’이 진저리나게 이어지니 그마저도 잊고 지낼 뻔했습니다.

정신 바싹 차리고 또 찾아 준 4월, 야무지게 <4월> 음반을 챙겼습니다. 삼 년 전 일입니다.

여전히 조는 녀석은 그대로 버려둔 채, 오보에가 푸른 하늘을 날고 하프가 샘물처럼 솟구치는 전주(前奏)에 맞춰 창가 잘하는 ‘쥬세페 디 스테파노’는 '그대는 이 푸른 4월을 아느냐'며 맑은 목소리를 쏟아냅니다. 저만 좋았을지도 모르지요.



“여러분 T.S 엘리어트의 <황무지>라는 시를 아는지요?”

물론 모릅니다.

“<황무지>라는 시의 첫 구절이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는...’ 그런 생명력이 살아나는 모습을 일러 영국출신의 이 시인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지요. 아는 사람?”

몇 명은 끄덕입니다. 고맙게도요.

“자, 그럼 뮤지컬 <캣츠>는 다 알겠지요? 그 뮤지컬이 바로 이 시인의 <어느 늙은 0의 회상>이라는 시를 음악극으로 꾸민 거랍니다."

뭐 이러면서 말 풀었습니다.

"그 뮤지컬은 말이지요... T.S 엘리어트의 작품이 골간이예요. 거 왜 있잖아요, 그 중 나오는 '메모리'라는 노래, 다 알지요?”

“알아요!”

휴, 다행입니다. 이쯤에서 감탄이 나와야 하거든요.

외울 것 많은 [중국문화]시간에 걸핏하면 잘난 척 하는 선생이 T.S 엘리어트씩이나 말해주면 당연히 존경의 염을 보내야 마땅하거늘 너무나 조용한 겁니다. 조용한 정도가 아니라 어이없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참 요즘 애들은....

"선생님, 쥐가 아니라 고양이인데요!"

몹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평소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이 앉는 앞자리 대표가 한 마디 건넸습니다.

"엥? 내가 뭐랬는데?"

"<어느 늙은 쥐의 회상>이라고 그러셨어요."

끼약! 입니다.
하도 신경질 나는 일이 많아 "쥐"라는 말이 입에 붙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어려서 어른들에게서 자주 듣던 꾸중 가운데 하나가 '쥐정신'이었지요. 금방 들은 이야기도 까먹고 헛짓하면 으레 따르는 단골 레퍼토리가 '저놈의 쥐정신'이라는 지청구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생각에 몰두하느라 당부나 심부름을 대충 흘려듣고 덩둘하게 해 제끼니 혼나도 할 말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그 "쥐정신" 소리가 어찌나 듣기 싫었는지요.

맹세컨대 수업만은 제대로 가르치려 꽤 애써왔습니다. 그래서 전공과 직접적인 상관없는 인근과목 꺼정 어떻게든 머리에 넣어주려 극성스럽게 쏟아 부어왔습니다. 정말입니다.

설마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연되는 <어느 늙은 고양이의 추억, (캣츠)>를 일부러 왜곡하겠습니까?
억울합니다, 억울해요. 어떻게 해? 나 어떡해? 요샌 걸핏하면 잡혀가기도 한다는데..

비바람에 피려던 꽃도 주춤하는 2010년 4월이었습니다, 대박입니다. 아닌가요?
광우병 소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 때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들었다던가, 불렀다던가했던 어느 양반, 두 해쯤 지나니 촛불 들었던 우리를 영 엉망이라고 헛소리 하더군요.

우리 어머니가 걸핏하면 날리셨던 "쥐정신"의 가장 지독한 예가 아닐 런지요.
에구,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 정치에 관심을 높일까요. 이 녀석들 제발 '쥐정신'아니길 바라며 그들의 현실적 고통이 좀 줄어들면 못난 기성세대인 제가 덜 죄스럽겠습니다.

그나저나 토스티의 <4월>은 어떻게 때웠으니 볕 좋은 오후 <어느 늙은 고양이의 회상> 가운데 목소리 시원하고 발음 좋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메모리> 한 판 들어야겠습니다.

그러기 전에 한 가지 꼭 밝히고 지나갈 일이 있습니다.
제가 무지무지 젊었을 때 운 좋게 사천에서 태어난 친구를 얻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 못 알아들어 마치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듯 헤매면서도 4월만 돌아오면 우리는 ‘꽃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이 마음은 푸른 산 저 너머...’를 목이 쉬도록 불러 제꼈습니다.

‘그대가 있길래 봄도 있고 아득한 고향도 정들 것 일레라’는 대목에서는 온 감정을 실어 정성을 쏟아 붓기도 했지요. ‘아득한 고향도..’라는 구절에서 사천과 진주를 애절하게 그리워한 친구 가슴에 담긴 망향의 심정을 제가 알 도리는 없었지만요.

그 친구가 수십 년 외국생활에 가리 늦게 (이 표현 맞나요?) 학위 받아 돌아왔습니다. 얼굴 본 시간보다 몇 십 배 오래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왔지만 올 봄부터는 함께 <망향>을 함께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생각만 해도 살맛납니다.

봄은 여전히 힘들게 오고 있습니다.

석사반 시절, 우리선생님 방에서 수업할 때 그리도 번번이 ‘쥐정신’으로 방문 열었다가 “아!” 민망한 목소리를 내며 뒤돌아서시던 분, <망향>을 작곡한 채동선 선생이 당신의 장인이라며 자랑을 일삼으셨던, 생각보다 일찍 세상 뜨신 경영학과 선생님도 느닷없이 생각나고 세월은 쏜살 같이 흐릅니다.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사천에서 ‘꽃피는 봄 사월’을 불러보고 싶군요. 글로만 말고요.

<임계재의 음악놀이터>는 음악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았거나 감동했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공간이다. 글쓴이 임계재 선생은 중국문학을 전공한 작가이면서, 현재 숙명여대에서 중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학창시절, 전공 공부보다는 음악듣기에 더 빠져 있었다는 게 글쓴이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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