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인 이주노동자 ‘수립또’, 입국 두 달 만에 고향행

‘몇 년 간 고생해서 가족과 오순도순 꾸려갈 가게를 장만하리라!’

야무진 꿈을 꾸며 한국에 들어온 수립또(32살, 인도네시아) 씨. 그러나 그의 꿈은 채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꿈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것. 그는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11일 오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 주인공은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줄여 다문화통합센터) 이정기 센터장. 그의 목소리에는 심각함이 묻어났다.

“이주노동자 한 분이 폭언과 폭행을 피해 찾아왔는데...”

다문화통합센터를 찾아갔다. 장화를 신고 작업장에서 일하던 복장 그대로인 모습으로 앉아 있는 한 사람. 수립또 씨다. 까만 피부에 유난히 눈망울이 맑아 보이는 그는, 그러나 우울한 빛이 역력했다. 이정기 센터장이 수립또 씨와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웠다.

▲ 이주노동자 '수립또'. 돈을 벌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던 그는 두 달이 채 안 돼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려 한다.
아버지와 아내, 6살 난 딸을 두고 수립또 씨가 국내에 들어온 건 지난 4월 16일. 이때만 해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일하기로 한 곳은 ‘죽방렴’이 있는 어업장. 물때에 맞춰 일하다보니 밤이나 이른 새벽에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처음 하는 일이라 손에 익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일이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진정으로 힘든 것은 역시 사람. 함께 일하는 동료가 걸핏하면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 폭행에는 주먹과 몽둥이가 동원됐다. 술에 취한 행동이라 여기고 참기도 여러 번. 그러나 계속되는 폭행에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사장에게 동료의 폭행과 폭언 사실을 알리며 제재를 요구했지만 이후에도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서운했다. 오히려 ‘물에 빠트려 버리겠다’는 협박이 동료로부터 돌아왔다. 실제로 물에 빠트리는 시늉을 할 때는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는 수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수립또 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다문화통합센터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여기까지가 이정기 센터장의 통역을 그친 수립또 씨의 얘기다. 사업주와 그 직장동료라는 이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니 속사정을 다 알 수는 없으나 마음고생은 제법 한 눈치였다.

▲ 직장 동료로부터 폭행을 당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수립또 씨.
이주노동자들을 은근히 낮춰 보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 또한 꾸준히 나왔고, 그 결과 예전보다야 상황이 나아졌다. 그런데 다시 이 같은 상황을 접하니 마음이 복잡하다.

다문화통합센터 측은 출국예정사실확인서 발급 차 수립또 씨를 진주고용안정센터로 데려가 그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난감해 하는 담당자. 수립또 씨의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일부 이주노동자들 중에는 거짓말로 사업주를 곤란에 빠트리고, 심지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속여 불법으로 다른 직장을 찾는 경우도 종종 있단다.

이후 수립또 씨를 고용했던 사업주가 다문화통합센터를 찾았다. 수립또 씨가 인도네시아로 돌아가겠다면 말리지 않겠다는 뜻과 함께 수립또 씨의 짐과 정산한 임금을 전달했다.

수립또 씨는 이제 고국 인도네시아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만 실으면 된다. 어렵게 마련한 기회를 살리지 못했으니 다시 한국에 들어와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50일 가량 일했다. 한 달 치 월급 110만 원은 이미 집으로 보냈고, 정산한 70여만 원이 수중에 남았다. 항공료 등 돌아갈 여비로도 빠듯하다. 그가 국내에 들어오기 위해 140만 원 정도를 썼다고 하니, 겨우 40만 원을 벌고 떠나는 셈이다.

▲ 진주고용안정센터에서 외국인 고용허가제에 관해 설명하는 자료.
‘진짜 다른 직장을 구해 가는 것 아냐?’

이런 의심이 불쑥 인다.

하지만 이 센터장은 손사래를 친다.

“이주노동자들을 많이 만나봐서 우리도 척 보면 알죠. 꿍꿍이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통 불법체류자로 전환하는 경우는 국내에 머물 수 있는 기한이 끝나갈 때 발생하고, 또 그러기 위해 사전 준비작업이 이뤄진다. 그런데 수립또의 경우 그런 흔적이 별로 없고, 얘길 나눠보니 진심이란 생각이 든다.”

이 센터장의 설명에도 의심은 쉬이 걷히지 않는다. 그래서 수립또 씨에게 다시 물었다.

“굳이 떠날 필요가 있는가? 어렵게 들어왔는데,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더 참고 견뎌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센터장의 통역에 따르면 수립또 씨는 이렇게 답했다.

“마을 친구들이 한국에 들어와 있고, 역시 어렵게 일하고 있다. 또 다른 친구 하나는 인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사고로 숨졌다. 그래서 바다와 관련해선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다. 고향을 떠날 때 동네사람들로부터 성대한 배웅을 받았는데, 돌아가려니 부끄럽다. 가족들과 함께 할 창업도 꿈꿨는데 어렵게 됐다. 가족들이 아마 실망할 것이다. 이 또한 ‘알라’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청운의 꿈을 품고 한국에 들어왔을 수립또 씨. 그의 눈에 비친 한국, 한국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너무 '나쁘다'는 느낌으로만 남아 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