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삼천포'를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삼천포 지역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는 아마도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다"는 표현일 것이다. 이 표현은 대체로 일상에서 어떤 일을 해나가다 잘못되어 곁길로 빠지거나 엉뚱하게 일을 그르치는 경우에 쓰거나 대화중에 엉뚱한 이야기로 빠질 때 쓴다.

아무튼 좋지 않은 상황이나 잘못된 경우에 빗대어 쓰는 표현이어서 삼천포 지역 사람들은 듣기 언짢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표현을 별 생각 없이 사용했던 방송이나 언론, 공인들이 삼천포 지역 주민들이나 사천시로부터 항의를 받고 공식사과를 하거나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일이 여러 차례 있어왔다.

그래서 한국방송윤리위원회는 1977년 3월 심의회를 통해 이 표현을 비속어·은어로 규정하여 방송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런 표현이 나오게 된 유래와 관련한 이런 저런 얘기들을 주워 모아 보면 대충 대여섯 가지 설로 정리되는 것 같다.

도로와 관련된 몇 가지 설은?

첫째는 도로와 관련된 몇 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옛날에 어떤 장사꾼이 장사가 잘 되는 진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장사가 안 되는 삼천포로 가는 바람에 낭패를 당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랑극단이나 서커스단이 겨울철이면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공연을 했는데, 음력 10월 3일부터 진주에서 개최되던 개천예술제에서 공연을 마치게 되면 삼천포에서 겨울을 보내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천포에 가서는 재미를 보지 못하고 외려 적자로 인해 단원을 담보로 잡혀야하는 경우도 발생하자, 푸념조로 하던 표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다음은 부산에서 화물을 싣고 진주로 오던 기사가 국도 2번 선과 3번 선이 만나는 개양 교차로에서 진주와는 반대 방향인 삼천포로 진입한데서 유래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진주에서 볼일을 보던 고위 정치인이 급히 부산에서의 회동을 위해 2번 국도를 타고 부산으로 가야하는데 기사의 부주의로 3번 국도로 잘 못 들어서 삼천포로 간데서 유래한 설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선 말엽에 경남 고성에 살던 어떤 이가 진주의 사돈댁을 찾아가다가 고성군 상리면 척번정리의 삼거리에서 삼천포로 잘못 들어선 데서 유래했다는 얘기다. 마지막 하나는 진주에서 33번 국도로 사천을 거쳐 고성에 가려던 사람이 사천읍에서 3번 국도와 만나는 교차로에서 무심코 직진을 하다보면 3번 국도의 끝이었던 삼천포에 닿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뭍의 끝자락까지 갔다가 속절없이 되돌아와야 했던 허탈한 심경에서 헛고생한 걸 자조적으로 표현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바다 길에서 생긴 일화들에서 유래?

둘째는 바다 길에서 생긴 일화들에서 유래된 설이다. 하나는 전라도 지방에 출어한 어선이 태풍을 만나 부산이나 마산, 충무로 귀항하지 못하고 급해서 삼천포항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생긴 말이라고도 하는가 하면, 목포·여수 선적의 어선들이 시세가 좋다는 말을 듣고 삼천포로 가서 수협에 위판을 하려다가 운 나쁘게도 어획량이 너무 많이 들어와 시세를 맞추지 못한데서 나온 말이라고도 한다.

다른 하나는 남해안의 도로 교통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 뱃길을 많이 이용하였는데, 부산-성포(거제)-충무(통영)-삼천포-노량(남해)-여수를 잇는 노선이었다. 가령 부산서 배를 타고 통영으로 가야할 사람이 잠이 들었다가 삼천포까지 가버린 데서 유래한 이야기다.

관직의 인사발령과 관련된 설?

셋째는 관직의 인사발령과 관련된 설이다. 그 하나는 조선시대 임금 직속의 '정랑(正郞)'이란 벼슬이 있었는데 이 자리는 청직(淸職)인 관계로 대단히 명예스러운 자리였으며 임금에게 정책에 대해 직접 간(諫)할 수 있고 주요 직책에 인물을 천거할 수 있는 요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직을 거치면 탄탄대로의 출세가 보장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사색당쟁이 심한 시절에는 주도권을 잡은 당파가 바뀌면 모함을 받아 귀양살이를 떠나게 되었는데, 이때 가게 된 귀양처가 삼천포를 거쳐 외딴섬으로 많이 가게 되어 유래된 표현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천시로 통합되기 전의 삼천포시는 1956년에 33번째로 시로 승격되었지만 시세가 소규모인 데다가 지역적으로 외져있었던 관계로 공직자들이 삼천포로 발령되는 걸 꺼려하던 시절이어서 나온 이야기라는 설도 있다.

철로와 관련된 일화에서 유래?

넷째는 철로와 관련된 일화에서 유래된 설이다. 첫 번째 일화는 진해에 해군기지가 생긴 이래 진해에서 서울로 휴가를 나왔다가 귀대하는 도중에 분기점인 삼량진에서 진해 가는 기차를 갈아타지 않고 잘못하여 진주-삼천포로 가는 것을 갈아타는 바람에 귀대 시간이 늦어져 혼이 난 병사들에게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일화는 진주-삼천포간 철로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1965년에 김천시와 삼천포시의 철도 건설로 계획했던 '김삼선'의 일환으로 1953년에 진주의 개양역과 사천역 구간이 개통된 후에 1965년에 삼천포역까지의 진삼선이 개통되었다.

그런데 부산을 출발하여 진주로 가는 기차에는 삼천포로 가는 손님과 진주로 가는 손님이 함께 탄 다음, 기차가 개양역에 닿게 되면 진주행과 삼천포행의 객차로 분리하여 운행하였다. 이때는 반드시 방송을 통해 진주행 손님과 삼천포행 손님은 각각 몇 호차로 옮겨 탈 것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진주에서 내려야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잠들거나 하여 엉뚱하게 진주가 아닌 삼천포로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표현이라는 것이다.

일본 밀항과 관련된 일화도 있어

다섯째는 일본 밀항과 관련된 일화이다. 우리나라가 어렵던 시절인 오 육십년 대에는 야간에 동남해안에서 배로 일본으로 밀항하려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등을 쳐 먹는 악질의 브로커들이 수수료만 챙긴 다음, 야밤에 승선한 사람들을 일본 감시선을 피한다는 이유로 갑판 아래로 내려가 숨게 하고서는 연안 바다를 몇 시간 빙빙 돌다가 뭍에 배를 대고 일본에 도착했다고 내려놓은 곳이 대마도가 아닌 삼천포 인근 해안이어서 이런 표현이 나오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아무튼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다'는 말은 뜻밖에 좋지 않은 상황에 빠졌거나 엉뚱하고 잘못된 경우에 빗대어 넋두리처럼 쓰는 표현에서 삼천포를 들먹이니 삼천포 지역 사람들은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삼천포 사람들이 그런 표현에 대하여 지역차별이라느니 삼천포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고 삼천포 지역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다며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불쾌해 하는 것은 다분히 패배주의적인 태도가 아닌가 싶다.

방송에서나 언론에서 또는 어떤 공인이 그런 표현을 했다고 해서 언제까지 사천시가 나서서 항의하거나 공식사과를 요구하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받는 그런 번거로운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지? 그래서 사천시민이나 삼천포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건 무엇일는지?

이제는 과감하고도 통큰 역발상이 필요한 때

▲ 김흥길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오마이뉴스 윤성효
이제는 삼천포 지역 사람들의 과감하고도 통큰 역발상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그의 저서 '생각의 속도'에서 다음과 같은 역발상을 제시한 바 있다.

맥도날드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해피 밀 세트를 사면 장난감을 선물로 주곤 한다. 레고 장난감의 경우는 10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것들이 많다. 햄버거는 메뉴 세트라 할지라도 만원이 채 안 된다. 그렇다면 맥도날드가 햄버거를 팔면서 장난감을 끼워줄 게 아니라, 좀 더 비싼 장난감을 팔면서 햄버거를 덤으로 주는 게 훨씬 수지가 맞는 사업이 되지 않을까?라고.

지방자체 시대가 열리면서 지자체들이 재정자립도를 높이려는 다양한 방안과 전략들을 마련하는 가운데 자주 쓰인 표현이 경영마인드의 도입이었다. 경영마인드란 능률성과 유효성을 추구하는 마인드, 생산성과 경제성, 수익성 등을 따져보고 원가를 절감하거나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성과 지향적 마인드, 시장 지향적이거나 고객 지향적인 경쟁우위의 마인드,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의 전략적 마인드 등을 일컫는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 상황을 두고 무한경쟁 시대니 세계화 시대, 또는 지방화 시대라고도 표현한다. 아무리 경영마인드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시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트렌드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시대상황은 바뀌고 있는데 언제까지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거나 우물 안의 개구리와도 같은 미시적이고도 소극적이면서 속 좁은 생각에 매여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삼천포 주민이나 사천 시민들은 지금까지 얽매여있던 '편협하고 패배주의적인 삼천포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 풍광 자랑

삼천포는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과 명소들, 그리고 문화적 유산들을 지니고 있다.
삼천포는 더 이상 지리적으로 소외되거나 와 봐도 별 볼 일이 없는 그런 곳이 아니다. 삼천포는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과 명소들, 그리고 문화적 유산들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1966년에 삼천포 농악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어 1975년에 삼천포 12차 농악의 전수관이 문을 열었다. 이러한 지역의 문화적 유산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일환으로 사천시에서는 매년 여름에 세계 타악 축제를 개최해오고 있는데 올해로 여섯 번째였다.

그리고 2003년에 개통된 창선-삼천포대교는 2006년 7월 건설교통부 주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대상에 선정될 만큼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림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한려수도의 멋진 풍광은 대단한 자랑거리요, 실안 해안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멋진 모습은 '한국에서 낙조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칭송되고 있다.

그렇다면 '잘나가다가 삼천포에 빠진다'는 표현에 대하여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해볼 만하지 않은가! 이제부터는 "어서 오세요. 이곳이 바로 그리도 유명한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의 유래지, 삼천포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홍보한다면 어떨까?

또는 사천시 관문 어디쯤에다가 "잘 나가시는 여러분들은 지금, 그 유명한 삼천포로 빠지고 계시는 중입니다"라고 크게 써 붙여보면 어떨까? 아마도 그걸 보는 내방객들은 유쾌한 웃음 속에 삼천포를 뇌리 깊숙이 각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삼천포 지역 요소요소에는 "이 아름다운 삼천포로 빠져보시니 기분이 어떠신가요?"와 같은 문구를 자신 있게 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삼천포 주민과 사천시민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삼천포의 아름다운 풍광과 따뜻한 인심, 싱싱한 해산물과 물질문명에 병들지 않은 자연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 수 있도록' 삼천포를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보전하는 한편, 당당하게 자랑하고 홍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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