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빅 픽처' 리뷰

 

 

▲ 소설 빅 픽처 표지 사진 (주)밝은 세상 제공

 

프롤로그

장면의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작가의 소설은 대체로 진부하거나 혹은 느슨하거나 아니면 지루하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위대한 인간정신의 흐름을 너무나 정교하고 세밀하게 묘사했지만 이 소설이 가지는 가진 최악의 단점은 너무나 방대한 분량을 지루한 심리, 주위환경의 묘사에 할애 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 소설 읽기의 고통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으며 동시에 유사한 소설읽기가 꺼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 책을 펼치니 이 소설 또한 우리의 천박한 지식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전문적 용어와 지식으로 각각의 장면 묘사와 주인공의 독백, 등장인물의 객관적 심리 또는 주관적 심리, 각 장면에 등장하는 다양한 물건의 묘사가 가득하다. 하지만 만의 소설보다는 좀 가벼운 접근으로 포장한 작가의 능력 탓에 가끔씩 현장감을 더 하는 반전도 있었다.

 

이중성의 문제

인간에게 있어서 이중성이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중성이 가지는 비이성적인 면과 더불어 그것이 에너지로 승화되어 많은 업적을 남긴 위인들을 우리는 역사에서 자주 본다. 하지만 역시 그 이중성으로 고통 받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이중성이란 본인의 꿈과 현실의 부조화에 국한되는 말일 것이다. 자신의 객관적 현재와 자신이 꿈꿔왔던 주관적 현재가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그 이중성은 변태적이며 파괴적인 것이 될 공산이 크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꿈속에서 추구한 현실과 실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현실의 모습은 연봉 3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제법 성공한 변호사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꿈꿔온 것은 사진작가(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자연을 묘사하는 사진작가 정도)였다. 소설 속에서 지루하도록 묘사되는 각종 카메라 기기의 특성이나 모델명만 보더라도 분명 주인공의 꿈은 그 쪽이었는데 아버지의 반대로 변호사가 되어 현재에 이른 것이다. 그 사실은 그의 현재를 갈등하게 하고 그의 갈등은 현재의 자신을 흔들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지는 일본소설의 비정상적 음울함이나 그 이전의 나쓰메 소세끼가 가졌던 이중성과는 다른 미국적 이중성이 소설을 관통하는가 싶었는데 돌연 주인공의 살인으로 소설은 통속으로 추락한다. 통속으로 추락한 소설은 또 그대로의 가치를 가진다. 살인 이후의 소설은 주인공의 실체적 변화를 그리고 있으며 그것은 독자들의 기호를 위한 작가의 부응(결국에는 상업적 부응이겠지만)으로 이해된다. 완전범죄를 향한 주인공의 노력은 또 다른 부분(범죄 심리학)과 맞닿아 있어 책을 읽는 독자는 작가의 능력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불안

현대인들의 다양한 환경에서 생존해 나가고 스스로 그 다양함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다양함은 다양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와 연결되고 그 문제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불안으로 연결된다. 즉 변증법적으로 불안은 다양함의 귀결인 셈이다. 미국이라는 사회는 다양함이 최대로 증폭된 곳이다. 그 중 뉴욕이라는 도시는 그 증폭이 최대치로 일어나는 곳이고 그 중 월스트리트는 증폭의 정점이다. 그러니 그곳에서 변호사로 있는 주인공은 당연히 불안하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모든 것이 유동적이며 모든 것이 최저와 최고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컷으로서의 근본적 불안, 이를테면 암컷의 소유에 대한 불안(즉 아내의 부정에 대한 막연한 불안,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는)까지 부가된 주인공의 심리상태는 그야말로 혼돈과 무질서 그 자체다. 거기서부터 이 이야기가 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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