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재의 음악놀이터]이름에 얽힌 이야기 & 베토벤 현악4중주

친구, 참 기막힌 단어입니다. 세상에 이만큼 믿음직한 무게를 싣는 단어도 드물지요.

중국에도 대단한 친구 이야기가 꽤 여러 가닥 있습니다. 어수룩한 시절이라 더 절실할지도 모르겠군요. 사자성어(四字成語)도 여러 가지 있지요.

춘추시대, 가장 흔히 떠올리는 사람으로는 관중과 포숙아 이야기지만 제게는 그보다 애절한 사람 둘이 첫 손에 꼽힙니다.

호북성 무한(武漢}공항에서 시내로 가다보면 장강물이 넘실거리는 골짜기 성큼 너머 꼭대기에 고금대(古琴臺)라는 곳이 있어요. 개혁개방 이후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화강암으로 빚어진 두 남자가 손을 맞잡은 석상이 있고 옆의 어둑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 두 사나이의 이런저런 고사가 적힌 팻말이 곳곳에 세워져 있지요.

무한지방 일대인 초나라 출신인 유백아는 고금(古琴, 우리말로 흔히 거문고라 번역하는 고금과 거의 가야금에 해당하는 고쟁(古箏)이 있어요.)의 명인, 요즘 말로 한다면 마에스트로였는데 진나라를 비롯해 중원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자로, 자기 고국인 초나라에 사절로 갔다지요.

일에 지쳤는지 물가의 너럭바위에 앉아 한 곡 켜는데 나무꾼 종자기(種子期)가 자신의 음악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에 감탄하며 둘은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네요. 일 년 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으나 차일피일하다 뒤늦게 찾아가니 종자기는 이 세상사람이 아니었고 한 곡을 연주한 후 ‘자신의 음악을 이해해줄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연주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악기 줄을 끊었다지요.

자신이 연주한 곡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낸 나무꾼 종자기와 유백아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상상만 해도 기가 막힙니다.

열자(列子) 탕문(湯問)편의 지음고사 수업하면 꼭 읽어주는 시가 <김현의 본명은?>입니다. 백아절현(伯牙絶絃) 또는 지음(知音)의 한국판인 내용이지요.

중국에 갈 때면 황동규 시인의 시집을 챙겨갑니다. 중국말 하는 긴장감에서 이완이 필요할 때, 몇 번이고 읽었지만 매번 새로운 그의 언어가 좋아서, 뭐 이런저런 이유에서입니다.

황 선생의 여러 시집 가운데 [미시령 큰 바람]에는 터무니없는 나이에 친구를 놓친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의 이야기가 유독 많이 실려 있습니다. 마흔 아홉, 말도 안 되는 나이에 저 세상으로 끌려간 친구를 잃은 어처구니없는 마음을 여러 편 시로 옮겨놓으신 겁니다.

저는 이십 대에 만난 [어린왕자]의 역자 해설부분을 아직도 몇 구절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어린왕자'를 새겨주신 분, 물론 다른 분이 번역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평론가'라는 극찬을 들으셨던 김현 선생의 상실은 우리에게도 아픈데 문학적 지기로, 함께 통음한 친구로 학문적으로도 한참 물오른 나이에 친구 잃은 황동규 선생의 심정을 가늠이나 할까요.

김현, 이름 참 세련되고 쩝니다. 게다가 불문학 교수였고 쌩떽쥐베리라는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작가의 작품을 우리에게 건넨 선생님, 참 멋집니다만 뭔지 모를 찜찜함이 있었지요.
그걸 몽땅 들통 낸 이야기가 <김현의 본명은?> 이 시에 있습니다.

친구 떠나고 삼주기를 앞둔 전날 황 선생은 갈무리해 둔 좋은 술과 기막힌 음악으로 친구를 추모합니다.
음악 깊이 있게 듣기로 소문난 선생이 고른 곡이 알반베르크 4중주단의 베토벤 현악4중주라고 본인이 말합니다.

열일곱 개나 되는 현악4중주에서 어떤 곡을 들으셨을라나, 읽을 때마다 매번 궁금했지요.
개인적으로야 일면식도 없는 분인데 번잡스럽게 물을 처지도 물론 아니고요.
그러다 결정했습니다. 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후기 사중주 14번으로요. 제가 자주 듣거든요, 아니면 <대 푸가>라는 부제가 붙은 op 133이려나?



출처: 유투브
 

한국영화로 백만 명을 처음 돌파한 작품이 [서편제]였다지요.

그해 찌는 여름, 미국에 사는 친구가 잠시 귀국했었고 영화라면 시차나 컨디션과 상관없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저의 지음과 지금은 원래 모습 상실한 우리나라 신문물의 고향 같은 단성사 극장에 갔고 하염없이 울어대는 친구와, 얼결에 따라온 후배는 화장지가 떨어져 울다 그친 [서편제]가 나라를 들썩이던 해, 삼년 전 떠난 친구에게 ‘망초구름 떠다니는 저세상에서도 [서편제] 있냐?’고 묻는 황동규선생은 드디어 친구의 본명을 불러댑니다.
 
“광남아!”

하면서요. 전라도에서도 외진 섬 출신으로는 뭔지 너무도 도시적이고 진도 섬의 토속에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김현 선생의 부모님들께서 무척이나 개명하신 분들이네’ 이러면서도 미심쩍었던 치졸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처음 이 시를 읽으면서 ‘아! 그랬구나.’ 딱 떨어진 개운함이 들었단 말입니다. 본명이 참 수더분하고도 좋은 이름이구나. 근데 제가 불문학 하는 사람들에게 놀리는 ‘꽁드레 망드레’ 하기에는 좀 거리가 있단 생각이 들었는데 김현 선생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신 것 아닌지요.

남의 이름 가지고 괜히 이러는 데는 저에게 그럴 듯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제 이름을 단번에 제대로 쓰는 사람이 퍽이나 적습니다. 두 글자 가운데 하나는 의례 틀려요. 같은 이름도 거의 없고요.

참 대단합니다만 알고 보면 마흔 넘어 낳은 (당시로서는 남부끄러운), 그것도 딸내미에게 고상한 글자 주시기에는 특히 아버지가 피곤하셨던 모양입니다.

저희가 재(宰)자 항렬이니 그건 붙여야겠고, ‘에라 막내일 테니 계(季)자나 주자’. 막내라는 뜻이 있거든요. 그래서 임계재입니다.

이 얘기 들으신 어떤 철학과 선생님이 저를 막 놀리셨습니다.

“임 선생, 알고 보니 임 끝순이네!, 임 꼴찌야!”

경사 났습니다. 그래도 ‘딸 고만이(止女, 잘 아는 분 성함입니다)’보다는 낫지 않은가요? 히히.

이름에 불만을 잔뜩 품고 있었던 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어쨌거나 여전히 아버지께 받은 이름으로 꿋꿋이 버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친구'라는 단어에 유난히 까다롭고 인색한 저에게 남부러울 것 없는 지음도 건재하고요. ‘남이 부러울 지’도 모르겠군요.

“많이 무따 아이가!”식의 시시껄렁한 친구 따위 말고 말입니다.

피 흘러가는 것 보일만치 투명한 피부를 가진 고운 학생이 보고서 말미에 이렇게 썼더군요. '알반베르그'를 듣고 싶다고요.

바로잡아 줬습니다. 알반베르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품인 <숲속의 물레방아>를 작곡한 사람이고 황동규 선생이 말한 알반베르그는 현악4중주단 명칭이라고요.

이 친구 불러 음악이야기 주제로 한 영화 한 편 봐야할까 봐요.
광화문에 커다란 망치를 든 엄청나게 키 큰 사나이가 버티는 극장에서요.
그리고 꼭 봐야할, 곱게 늙어가는 존경하는 부부에게도 선물로 티켓 전하고 말입니다.

<임계재의 음악놀이터>는 음악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았거나 감동했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공간이다. 글쓴이 임계재 선생은 중국문학을 전공한 작가이면서, 현재 숙명여대에서 중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학창시절, 전공 공부보다는 음악듣기에 더 빠져 있었다는 게 글쓴이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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