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폐 의심 오만원권에 국과수 “띠형홀로그램이 훼손된 진폐” 결론
훼손지폐 ATM기 통과는 뭘 뜻하나.. 위폐대응전략 개선 필요

요즘 오만원권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한쪽에선 위조지폐 이야기고, 다른 쪽은 ‘지하경제’로 흘러들어 유통이 잘 안 된다는 얘기다. 둘 다 오만원권이 처음 시중에 나올 때부터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으로 꼽혔던 터라 새로울 건 없겠다.

그런데 경남 사천에서 최근 재미난 사건이 있었다. 사천경찰에 접수된 2건의 위조지폐 의심사건 가운데 1건이 ‘가짜’가 아닌 ‘진짜’로 드러난 것이다. 경찰과 조폐공사 등 관계기관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사건을 따라가 보자.

7월 22일 오후, 사천축협 사천지점 한 직원이 의심스런 오만원권 1장을 은행업무자동화기기(=ATM기)에서 발견한다. 이 직원은 문제의 오만원권에서 띠형홀로그램이 없는 점에 주목해 이를 위조지폐로 의심하고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른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위조의심지폐를 확보하고 순간 당황한다. 확보한 지폐가 너무나 진폐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오만원권에 숨어 있는 15가지 위조방지장치 가운데 띠형홀로그램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 빼고 모두 완벽했다.

▲ 지난 7월 22일 사천축협 사천지점 ATM기에서 발견돼 위조지폐 의심을 샀던 오만원권. 왼쪽 가장자리에 띠형홀로그램이 보이지 않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정밀감식 결과 "띠형홀로그램이 훼손된 진폐"라는 결론을 내렸다.
더 심각했던 건 이 지폐가 ATM기를 통과했다는 점이다. 위폐일 경우 현금유통망에 일대 혼란을 줄 수 있는 큰 사건이었다.

경찰은 위조의심지폐가 ATM기를 통과하는지 다시 확인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ATM기를 통과하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이 위조의심지폐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위폐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했고, 돌아온 답변은 “띠형홀로그램이 훼손된 진폐”였다.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이 오만원권이 ATM기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지문감식 과정에 사용한 화학약품에 오염됐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띠형홀로그램이 없는 오만원권’, 과연 가능할까?

결론은 ‘가능하다’이다. 단, 조폐공사에서 지폐를 찍어 나올 때부터 없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웠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조폐공사 기술연구원 화폐사업팀 주민규 과장은 “화폐제조 과정에서는 아주 작은 흠이라도 정밀검사 과정에 모두 드러난다. 띠형홀로그램은 가장 강력한 위조방지장치인데, 이것 없이 출고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2006년께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음을 소개했다. 당시 한 화폐수집가가 홀로그램이 없는 오천원권 새 지폐를 고액에 구매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역시 누군가가 홀로그램을 지워 일어난 일이었다는 얘기다.

주민규 과장은 “레이저를 이용하거나 화학약품 처리로 홀로그램을 지울 수 있긴 한데 오만원권 발행 후 이런 일이 일어나기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띠형홀로그램이 훼손된 오만원권이 ATM기를 통과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일까?

답은 ‘경우에 따라 가능하다’이다. ATM기 제조사들마다 은행권 화폐를 인식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이미지를 보고 확인하거나 특수잉크를 인식하는 등 여러 방식이 있다고 한다. 업체들이 이에 대해 영업비밀로 삼고 있기에 자세한 내용은 알기가 힘들다는 게 조폐공사 쪽 얘기다.

▲ 한국은행과 한국조폐공사가 오만원권 지폐에 마련해둔 위조방지장치들. 조폐공사 인터넷홈페이지 참조.
이 같은 내용을 놓고 보면 누군가 고의로 지폐 일부를 훼손해 유통시킬 경우 시중에 큰 혼란을 줄 수 있음이다.

이번 사건만 해도 ‘가장 강력한 위조방지장치’라는 띠형홀로그램을 지웠음에도 ATM기를 통과했고, 이로 인해 일선 경찰에서는 ‘대형 범죄 조직이 개입한 것 아니냐’며 한때 긴장했다. 위조의심지폐가 워낙 ‘진짜’ 같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천경찰에 이어 국과수까지 헛심을 썼다. 문제는 이런 ‘헛수고’가 언제든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화폐 발행 사항을 담고 있는 한국은행법은 주화를 훼손할 경우에 대해서는 처벌규정(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을 두고 있지만, 지폐 훼손에 대한 언급은 없다.

따라서 한국은행과 한국조폐공사가 은행권 제조 시 마련한 15가지 위조방지장치 중 일부를 의도적으로 훼손했다 하더라도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경우처럼 진폐를 두고 위폐 논란을 벌이는 우스꽝스런 상황이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관계기관의 위폐대응전략이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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