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의 오솔길> 영화 킬링시즌 2013 리뷰

 

▲ 두 주인공의 성격이 잘 묘사된 영화 포스터. 팝 파트너스 제공.
전쟁

인류역사에서 많은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죽은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은 전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의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과 화해를 주창하는 종교 문제와 인간 이성의 결정체인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가장 먼저일 것이고 종족간의 갈등이나 영역문제가 그 다음일 것이며 정작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는 거의 마지막 원인에 속할지도 모른다. 

전쟁의 과정은 참혹하다. 서로를 죽여야 하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형성되고 동시에 합법적 살인의 순간이 오면 인간들은 야수의 광기에 사로잡혀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고 도륙과 학살을 일삼는다. 이러한 잔학함은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지속될 인류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영화는 바로 이러한 전쟁의 장면을 동기로 하여 두 주인공의 날카로운 대립을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시에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학살의 두 당사자로서의 참회와 그 광기의 순간을 교차 편집하여 보여준다.

 보스니아 내전

1980년 5월 유고연방의 독재자 티토가 사망하자 유고연방 내부의 민족주의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유고연방은 세르비아ㆍ크로아티아ㆍ슬로베니아ㆍ마케도니아ㆍ몬테네그로ㆍ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 6개 공화국과 보이보디나 및 코소보 2개의 세르비아 자치주로 구성된 다 민족, 다 종교 국가다.

제일먼저 독일계인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하자 이에 영향을 받은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가 독립을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옛 유고의 정통이라고 자처하는 세르비아가 신 유고연방을 결성하는 명분으로 보스니아 독립을 저지하고 나서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보스니아 사람들에 대한 인종 청소를 저지르고 이것을 기화로 내전은 서로간의 무참한 살육전으로 전개된다. 아마도 영화는 이 시기의 학살과 그 뒤의 유엔 평화 유지군의 참전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죽고 죽이는 과정에 대한 포착일 뿐 그러한 살육의 역사적 배경이나 과정에 대한 영화적 표현은 없다. 그것은 이 영화의 관심이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광기, 그리고 인간성의 말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주인공

벤자민 포드(로버트 드 니로 분)와 에밀 코바쉬(존 트라볼타 분)는 당시 그 참혹한 전쟁의 당사자로서 벤자민은 미군으로 참전했고 에밀은 세르비아 군인으로 참전하여 인간 도륙의 현장에서 서로에게 총을 겨눴던 사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는 매우 큰 분노가 필요하다. 타고난 살인자 혹은 정신 이상자를 제외하고 보통의 심성으로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장(戰場)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합법적 살인이 강요되고 동시에 스스로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본능적으로 상대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 몰리는 곳이 바로 전장이다.

이런 상황을 오래 겪게 되면 인간의 이성은 무디어져 죽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마침내 짐승을 죽이듯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죽이게 된다. 그 극단의 상황에서 조우했던 두 주인공이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 다시 만난다. 즉 벤자민의 총에 맞았으나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에밀의 복수를 영화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 노 배우 로버트 드 니로를 통해 전쟁이 인간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가를 잘 말해 준다. 팝 파트너스 제공.

인간으로서 경험하지 말아야 할 일을 경험한 벤자민은 그 끔찍한 전쟁의 기억 때문에 퇴역 후 애팔래치아 깊은 산골에서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고 있다. 단지 전장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을 리 없다. 그 살인의 기억들이 개인에게 주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여러 가지 정신질환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주인공 벤자민은 스스로를 사회와 격리시킴으로서 스스로에게 엄중한 벌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수 십년의 전쟁으로 많은 참전 군인들이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환자가 있는 것을 알려져 있다. 베트남 전쟁 이후의 전쟁 참전자 중 약 1/3 정도의 군인들이 이 증세로 치료받은 경험이 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미국 내의 심각한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 에밀 코바쉬 역의 존 트라볼타. 그는 이 연기를 위해 실제로 세르비아에 여러 번 다녀왔다 한다. 팝파트너스 제공.

반면 에밀은 죽음의 시간을 보낸 뒤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세르비아에서 미국까지 오게 된다. 에밀의 복수는 영화에서 벤자민이라는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만 사실 이 복수는 그의 가족의 죽음 그의 삶, 그리고 이렇듯 에밀 자신을 극한으로 몰고 간 추악한 전쟁 자체에 대한 복수로 이해 할 수 있다. 에밀 역시 이러한 스트레스로 여전히 고통 받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죽고 죽이는 전쟁에서 거창한 대의명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오직 호사가들의 말장난뿐이라는 것을 에밀의 삶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결 그리고 잔상

두 남자의 대결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잔혹함과 연민이라는 두 개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개의 감정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의 연출력도 있었겠지만 두 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존 트라볼타의 연기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활이라는 특이한 시퀀스를 통해 살해의 공포가 보다 더 극명해지는 경험을 하는데 우리 영화 ‘활’에서 느끼는 ‘활’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활’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총이 등장하지만 총은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못하는 설정은 감독의 또 다른 메시지일 것이다.

할리우드의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영화, 즉 엄청난 물량공세에 따른 폭파와 파괴를 이 영화에서는 볼 수 없다. 영화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두 배우와 애팔래치아의 수려한 자연풍광이 채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두 배우의 액션장면도 그저 그런 수준이다. 하지만 영화를 관람한 후 오랫동안 영화의 잔상이 머리에 남는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우리 인간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공격성과 잔혹함, 그리고 그것에 대한 치유(용서)와 인간적 연민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또, 두 주인공의 연기와 애팔래치아의 대자연, 그리고 감독의 치밀한 연출이 이 극단적인 이질적 감정을 잘 녹여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 선생의 오솔길>은 현현적적 시민기자가 클래식 평론, 영화 평론, 책 평론 등으로 세상읽기를 하는 공간입니다. 현현적적은 곤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준식 교사의 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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