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청년'의 첫사랑

이 이야기를 아껴주시는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인터넷신문 뉴스사천에서 5회까지 연재했던 '정 기자의 이야기보따리 Beta'의 정식버전을 내놓습니다. 10월 9일 창간된 주간신문에 게재된 본 편부터 새로 번호를 붙여나가려고 합니다. 연재 주기는 이전과 다름이 없습니다. 매주 목요일 뉴스사천 주간신문 발행 후 그날 오후에 인터넷에 싣습니다. 변함 없는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늘 고맙습니다.

-정대근 기자 드림 

 

온몸이 거울처럼 빛나는 아이가 태어났다.

특이한 신체특징 때문에 아이는 늘 놀림감이었다. 그러나 얼마 뒤 아이의 가족은 그것이 훌륭한 돈벌이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관람료를 내고 아이의 신비로운 몸을 구경했다. 구경꾼들은 점점 늘어났고 아이의 가족은 큰 부자가 됐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청년이 되었다.

그때까지 구경꾼들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청년은 여느 때처럼 구경꾼들에게 둘러싸인 채 앉아 있었다. 그때 한 여인이 그의 곁에 앉았다.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참 멋진 가슴을 가졌군요.”

여인은 청년의 가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매일매일 청년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의 곁에 앉아 한참 동안가슴을 들여다 봤다. 청년은 유난히 크고 반짝이는 그녀의 눈이 마음에 들었지만, 여인은 그의 눈보다 가슴에 관심이 더 많았다. 청년은 아침마다 방에 앉아 얇고 부드러운 천으로 자신의 가슴을 닦았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여인의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윽고 청년은 고백했다.

갑작스러웠지 만 여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유난히 크고 반짝이는 눈망울을 한 번 깜빡거렸을 뿐 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어요.”

“어떻게요?”

“당신의 가슴 안에 제가 들어 있잖아요.”

여인은 청년의 가슴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말했다. 과연 그의 가슴에는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남자 는 참 많았어요. 하지만 당신처럼 이렇게 가슴 안에 나를 담아준 사람은 없었죠.”

그날부터 여인의 관람료는 면제됐다. 청년의 곁에 앉아 언제까지나 그의 가슴 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거울청년은 행복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인의 눈빛을 마주 보기가 어려웠다. 그는 언제나 그녀의 머 리 꼭대기만 바라볼 수 있을 뿐이었다.

여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날이면 청년은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했다.구경꾼들이 더욱 자세히 자신의 가슴을 볼수 있도록 옷을 풀어헤친 채 드러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여인이 앉아 있던 자리까지 파고 들어와 반짝거리며 온 세상을 비추는 그의 가슴을 구경했다.

“이런 거짓말쟁이!”

어느새 나타난 여인이 누워있던 청년을 향해 침을 뱉었다.

“당신 가슴 속에 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저 낯선 여자는 누구예요?”

여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나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당신밖에 없어요.”

“거짓말!”

여인은 뒤로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렸다.

“미안해요. 나 때문이군요.”

청년의 곁에 앉아 있던 여자 구경꾼이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기다려도 여인은 돌아오지 않았다.청년은 더이상 아침마다 자신의 가슴을 닦지 않았다. 가슴을 풀어헤친 채 여인이 사라져 버린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계절이 지나가고, 다시 봄이 왔다. 황사가 청년의 가슴에 내려앉았고, 이따금씩 내리는 봄비가 얼룩을 만들었다.

곧 청년의 가슴은 아무것도 비추지 못했다. 그의 몸은 여느 사람들처럼 묽은 황토빛을 띠게 됐다. 구경꾼들은 하나둘 씩떠났고, 그는 더이상 돈벌이를 할 수 없었다. 청년은 태어난 뒤 한번도 만져본 적 없는 앞단추를 모두 채우고 길을 떠났다. 사람들이 여인을 욕했지만, 청년은 여전히 그녀가 그리웠다.

거울청년은 큰 삿갓을 쓴 채 세상을 떠돌았다. 크고 반짝이는 거울을 찾는 여행 이었다.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있으면 황급히 다가가 얼굴을 확인하곤 했다.

그는 세상에 남은 마지막 거울이 될 것이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찾아낸 거 울을 모두 깨뜨리고 다녔다. 세상에는 거 울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거울청년의 여 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혹시 그대가 깨진 거울을 본 적이 있다면 유심히 주위를 살펴보시길... 그것은 거울청년이 지나가며 남겨 놓은 흔적일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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