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작가의 사천삼천포愛 빠질 만한 이야기-3
자급자족에 그치는 고만고만한 곳이 대부분이나, 내륙의 길과 이어져 물산이 모이는 곳은 그야말로 성시가 이뤄집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는 구태의연한 말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영원히 성세를 누리는 곳은 없으며, 그렇게 한 잎이 지더라도 또 다시 화사한 꽃잎은 피어나는 법이죠.
한국관광공사가 철마다 이 달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추천하는 손꼽히는 대표 수산시장 삼천포어시장은 근대 산업기와 더불어 새롭게 피어난, 이른바 수산물 특화시장입니다.
삼천포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들어서인지 굉장히 오래된 느낌이었는데요, 의외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네요. 작은 포구이며 수산식량을 지역의 보급하는 역할을 하던 중 1966년에 삼천포항이 개항을 하면서 물산이 집결하는 큰 시장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삼천포서부시장으로 정식으로 개장한 해가 1978년이니, 이름을 알린 지는 햇수로 마흔일곱 또는 서른다섯 해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삼천포어시장의 이름을 만방에 널리 알린 이유가 있으니, 짐작했겠지만 바로 삼천포 쥐포입니다. 쥐포의 정확한 명칭은 쥐치포인데 이러나저러나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요, 1950년대인지 1970년대인지 정확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삼천포 어느 반가상에 올랐던 음식이 전국에 그 이름을 알린 대표특산물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맛있는 쥐포를 삼천포에 가면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무럭무럭 샘솟는 거죠.
뿐인가요? 여기에 죽방렴이라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아는 사람만 아는 방법으로 멸치를 팔딱거리는 모양 그대로 잡아 올리는 곳이기도 하니 굉장히 신기했을 겁니다. 식자층에서는 《경상도 속찬지리지》에, 그러니까 1469년 예종 1년에 편찬된 책에서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가 있어 신선도가 높고 그 맛 또한 뛰어나다……고 하는 글귀를 읊으며 감탄을 했을 겁니다. 뭐라고 할까요, 가치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요? 정말 볼수록 사랑스러운 겁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너무 멋지게 잘 자란 겁니다. 그리고 사십여 년의 세월이란 게 참 가볍지가 않기도 합니다. 보통 세대구분을 이십 년 길게 잡아도 사십 년으로 보는데요, 삼천포라는 지역명에 느끼는 애착이 남다르다는 거죠.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삼천포 지역은 사천군에 예속된 면이었다가 1956년에 남양면(南陽面)을 포함해 시(市)로 승격하였고, 1995년에 다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사천군과 통합되면서 사천시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세대 혹은 두 세대인 40년 만에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간 셈인데, 알게 모르게 야속함의 원인이 되고 말았네요. 그렇게 따지면 한두 세대 지나고 다시 심정적 아쉬움도 모두 없어지리라 생각도 됩니다. 아니, 워낙에 빨리 변해가는 세상이니 그만큼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새로운 형태로 이름을 남기면 되지 않을까요.
여하튼, 삼천포어시장이 삼천포용궁수산시장으로 탈바꿈해서 다시 한 번 발돋움을 하고 있습니다.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시설현대화 사업 정도가 아니라 74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기존의 시장터에 새로 건물을 짓고, 수산물 백화점처럼 시설과 동선을 재조정해서 상인과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곳으로 변모했습니다. 기존의 점포 268개 업소가 모두 들어서고도 남아, 오며가며 좌판을 벌이던 어머님들까지 모두 끌어들여서 규모가 상당히 커졌습니다. 소비자들의 발걸음도 경쾌하게 이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큰 이야기만 하다가 작은 이야기를 전혀 하질 못했네요. 갯가 아지매들의 짭쪼름한 풍상이 세월과 만나서 엮은, 아주 드라마틱한 성공담도 무지 많았습니다. 선구동 사는 모모 할머니 아니 아지매는 생선 팔아서 아들딸 다섯 자매를 모두 대학 보내고 박사 시켰다고 자랑하시는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뿌듯함이 배인 미소는 잊을 수가 없네요. 이 외에도 손님과 적당히 흥정하다가도 에라 모르겠다며 덤을 안기는 아지매들의 마음은 정말 널리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이것 참……, 할 말이 많아서 다음에 또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