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코테크의 그림들 ⑩

‘피나코테크의 그림들’은 사천 곤양고등학교 김준식 교사가 꾸미는 공간으로, 독일‘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그의 문화적 감수성으로 풀어 소개한다. 14세기 이후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편집자-

가슴을 드러내 놓고 있는 다나에가 다소 에로틱하다. 聖과 俗의 이중적 알레고리가 깔려있는 이 그림의 주인공 ‘다나에’는 많은 화가들에 의해 묘사되었다.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다나에의 에로틱한 모습들은 종교적 금기의 경계선에 있는 매력적인 주제였다.

아르고스의 왕인 아버지 아크리시우스가 장차 태어날 손자가 그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딸 ‘다나에’는 결혼도 하기 전에 아버지의 명령으로 높은 탑 안에 갇혀 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본다면 부도덕한 일이 분명하지만 위대한 ‘신탁’ 앞에 혈육의 정은 사소한 감정이었던 모양이다. ‘다나에’의 미모에 홀린 바람둥이 제우스는 황금 소나기로 변하여 지붕 틈으로 스며든다. 황금비는 감금된 공주의 무릎 위에 걸쳐진 천으로 떨어져 그녀를 수태시킨다. 이 결합으로부터 영웅 페르세우스가 태어난다.

다나에는 서양미술사에서도 가장 에로틱한 주제에 속한다. 사랑받는 사람, 굳게 닫혀있던 여인의 마음이 열리는 순간, 그 ‘열림’의 순간을 그린 표상이다. 그런데 그 ‘열림’의 수단이 하필 금이다. 여성 비하의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고대로부터 변하지 않고 계승되어져 온 매매춘 느낌도 역시 강하게 느껴진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금본위제 통화제도를 발달시켜 왔다. 금은 모든 사물의 가치척도로 사용되어 왔던 만큼 순수함, 시간이 지나도 부패하지 않는 영원성 등 ‘순수 가치’ 그 자체를 나타낸다. 그런가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의 모든 요소, 즉 부패와 탐욕 그리고 몰락을 역시나 금은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본명이 얀 호사르트(Jan Gossaert)인 얀 마뷰즈(Jan Mabuse)는 16세기 벨기에 사람이다. 이탈리아에 그림을 공부하러 간 그는 ‘다 빈치’에 영감을 받았고 이 때문에 그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벨기에 플랑드르 회화에 르네상스 양식을 도입했다. 그가 그린 대부분의 작품은 신화를 기초로 한 종교화였는데 이 그림 다나에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림 속에 다나에가 있는 공간은 높은 탑 위다. 주위의 풍광은 아르고스 왕국의 왕궁이 보이고 하늘은 푸르며 햇살은 밝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공간은 겨우 그녀가 앉을 수밖에 없는 좁은 공간이다. 황금비로 변한 제우스가 내려오는 순간을 마뷰즈는 포착하여 그림을 그렸다. 화려한 코린트식 장식과 붉은 색 바탕에 흰색의 무늬가 들어간 대리석 기둥들이 왕국의 화려함을 증명한다. 하지만 자신의 권력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딸을 가둔 비정한 아버지가 다스리는 왕국의 모습은 어쩐지 황량해 보이기도 한다.

많은 화가들이 이 ‘다나에’를 그렸고 그들이 그린 ‘다나에’의 모습은 당연히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다나에’에 대한 해석도 성모에 대한 영감으로부터 세속의 요부의 이미지까지 폭 넓은 가치기준을 제시한다. 즉, 황금비를 매우 세속적인 해석인 돈벼락으로 묘사한 그림에서부터 또 기독교적으로 마라아의 수태고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 그림들도 있다.
김준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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