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만능 주의에 울리는 경종

               무엇이 가치를 결정할까?

      

스위스는 방사능 핵 폐기장 장소를 찾으려고 수년간 노력해 왔다. 국가가 원자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도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한가운데 핵 폐기장이 들어서는 것을 원하는 지역사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핵 폐기장 후보지 가운데 스위스 중부의 인구 2100명의 볼펜쉬센이라는 작은 산악마을이 거론되었다.
 
1993년 핵 폐기장 건립 장소를 놓고 국민투표가 실시되기 직전에 일부 경제학자들이 마을 주민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하여, 만약 스위스 의회가 자신들의 마을에 핵 폐기장을 건립하겠다고 결의하는 경우에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찬성할지 물었다.
 
거주지 가운데 핵 폐기장이 들어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많았지만 근소한 차이로 거주민의 과반수인 51퍼센트기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마을 사람들의 시민적 의무감이 핵 폐기장 유치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누른 것이다.
 
여기에 경제학자들은 또 다른 조사를 실시했다.
 
의회가 당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핵 폐기장을 건립하겠다고 발의하고 각 주민에게 매년 보상금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 안건에 찬성하겠는가?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재정적 유인책을 추가하자 핵 폐기장 건립에 찬성하는 비율은 51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뚝 떨어진 것이다. 보상금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이 핵 폐기장을 건립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주민의 의지를 실제로 약화시킨 것이다. 보상금 인상 제안도 효과가 없었다.
 
경제학자들이 보상금 액수를 높였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평균 월수입을 훌쩍 넘는 일인당 8700달러를 매년 보상금으로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도 마을 사람들의 결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방사능 핵 폐기장 유치에 반대해온 다른 지역 사회에서도 덜 적극적이긴 했지만, 보상금 제안에 대해 비슷하게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스위스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보상금을 받을 때보다 받지 않을 때 핵 폐기장 유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스위스의 전형적인 농촌
 
일반적 경제 원리에 따르면 보상금을 지급하면 부담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경향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동기 하나를 발견한다.  공공선에 헌신하려는 도덕적 사고가 보상금을 지급하려고 하는 가격효과를 때로는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수의 마을 사람들에게 핵 폐기장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는 공공정신, 즉 국가 전체가 핵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으며 핵 폐기물이 어딘가에는 묻혀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만약 자신들이 속한 지역사회가 가장 안전한 저장장소라면 그 부담을 기꺼이 감당한 의지가 있었다.
 
이렇듯 시민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분위기에서 마을 주민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제의는 찬성표를 얻기 위한 뇌물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금전적 제안을 거절했던 주민의 83퍼센트는 자신들은 뇌물에 매수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정적 인센티브를 추가하면 이미 주민들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공공정신이 강화되어 핵 폐기장 유치 지지율이 늘어나리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재정적 시민적 인센티브 둘이 시민적 인센티브 하나보다 강력하지 않을까?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인센트브가 부가사항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훌륭한 스위스 시민들은 사적으로 이익을 제공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오자 시민의 문제를 금전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시장규범이 침입하면서 시민의 의무의식을 밀어냈던 것이다. 연구를 수행했던 두 명의 교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공공정신이 우세한 곳에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만 일부 지역에서 원하지 않는 시설을 건립하는 데 찬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재정적 인센티브를 사용하는 방법은 일반 경제이론에서 제안하는 것보다 높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러한 재정적 인센티브를 도입하면 시민의 의무의식이 밀려나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 기관이 단순히 지역사회에 시설을 유치하라고 강요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고압적인 규정은 금전적 인센티브보다 훨씬 심각하게 공공정신을 변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 스스로 위험성을 평가할 수 있게 하고, 공공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장소를 결정하는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고, 필요하다면 위험 시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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