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철 전 MBC 사장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과 형님들의 권유로 고향 사천을 떠났다. 태어난 동네와 정든 친구와 낯익은 산과 바다를 떠나는 것은 어린 마음에도 큰 아픔이었다. 부산을 거쳐 서울로 갔으나 어느 곳에서도 고향의 정겨움을 느껴보지 못 했다. 대도시는 어디까지나 생계의 터전이었지 마음의 고향은 아니었다.

몸은 떠났지만 마음까지 떠날 수는 없었다. 1979년 MBC 기자로 입사한 뒤 몇 년 동안은 정신없이 현장을 쫓아다니느라 어쩔 수 없었지만, 그 후로는 거의 달마다 한 번은 사천을 찾았다. 친구들도 만나고 바다도 보고 들길을 산책하고는 했다. 그러면 피곤에 지친 심신이 치유되고 새로운 활력이 솟고는 했다.

2010년 2월 MBC 본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하지만 취임식도 하지 못 했다. 선임된 그 날부터 노조에서 ‘낙하산 사장’이라며 출근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30년 이상 재직했고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선임된 사장을 ‘낙하산’이라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 두 번에 걸쳐 무려 210일 간이나 파업으로 맞섰다. 이런 판국이었으니 고향을 찾는 횟수는 예전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노조의 부당한 비판과 음해에 맞서 사장으로서 당당하게 업무를 수행했다. 경영권을 지켜내고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MBC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하여 2011년에는 사상 최고의 매출액과 연간 시청률 1등이라는 성과를 냈다. 유튜브와의 제휴도 성사시켰고, 글로벌 투자를 강화해 해외 지사를 확대하는 등 공격적 경영을 펼쳤다.

그렇게 순항하던 나와 MBC는 지난 해 3월 갑작스런 해임 사태에 직면했다. 자세한 사정은 짧은 지면상 모두 적기 어렵지만, 어떻든 그 일로 인해 사임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해임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스스로 사임한 것이었다.

부당한 노조 권력에 맞서 MBC를 글로벌 방송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마지막까지 정당한 업무 집행 과정에서 상처를 받았으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후회 없는 당당한 삶을 살다 귀향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떠난 사천으로 실로 50여 년 만에 회갑을 넘겨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사천은 내게 큰 위안과 행복을 주고 있다. 샛강에 나가 낚시도 하고, 호박을 따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날 좋을 땐 쑥을 캐서 국도 끓여 먹는다. 오래 전부터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가산오광대 일도 거들고 있고, 고향의 어린 후배들에게 문화 체험의 기회를 주기 위한 몇 가지 일도 벌이고 있다.

앞으로 시간이 나고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언론인으로서 경영자로서 평생 보고 느끼고 겪은 것을 모두 나누며 살고자 한다. 그것이 탯줄 묻은 내 고향에 대한 최소한의 보은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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