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 꽃
모내기를 앞두고 보리나 밀 등 겨울 작물을 심지 않은 빈 논에는 요즘 자운영 꽃이 한창이다. 자운영은 콩과식물이다. 콩과식물은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라는 것이 있어서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키는 일을 해 퇴비식물로 불린다.

옛 농부들은 이런 걸 어떻게 알았는지, 땅심(힘)을 키우기 위해 논을 놀릴 때는 자운영 씨앗을 받아 뒀다가 일부러 뿌렸다고 한다.

보리 논이 일을 하고 있다면 자운영 논은 힘을 키우고 있다.
‘자운영’ 하면, 나는 노래 한 곡이 늘 떠오른다. 80년대 가수 이태원이 불렀던 ‘그대’라는 노래다. 이 노래는 ‘그대 아름다운 얼굴에 슬픈 미소 짓지 마세요...’로 시작되는 차분한 노래다.

이 노래는 노래라기보다 ‘시낭송’에 가깝다. 노래 전반에 걸쳐 한 여성이 시를 읊기 때문이다. 이 시 첫마디에 자운영이 나오는데,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자운영을 몰랐다.

꽃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자운영 잎. 잎이 있어야 꽃이 핀다.
이 노래를 즐겨 듣던 나는 무척 궁금해 했으면서도 확인하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왠지 외국에서 들어온 꽃 같았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그 자운영이 내가 어릴 적부터 논에서 보던 그 꽃임을 알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우리는 누구입니까 빈 언덕의 자운영 꽃’ 하고 시작하는 시와 이태원의 노랫가락이 귀에 맴도는 듯하다.

아이들이 맘껏 굴러도 좋을 자운영 꽃밭이다.

이태원 노래 / 정두리 글

우리는 누구입니까
빈 언덕의 자운영 꽃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반짝이는 조약돌
이름을 얻지 못할 구석진 마을의 투명한 시냇물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스스로 다가오는 첫눈입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늘 앞질러 사랑케 하실 힘
덜어내고도 몇 배로 다시 고이는 힘
아! 한목에 그대를 다 품을 수 있는 씨앗으로 남고 싶습니다
허물없이 맨발이 넉넉한 저녁입니다
뜨거운 목젖까지 알아내고도 코끝으로까지
발이 저린 우리는 나무입니다

우리는 어떤 노래입니까
이노리나무 정수리에 낭낭 걸린 노래 한 소절
아름다운 세상을 눈물 나게 하는
눈물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대와 나는 두고두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네게로 이르는 길

네가 깨끗한 얼굴로 내게로 되돌아오는 길
그대와 나는 내리 내리 사랑하는 일만
남겨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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