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네(Carle Vernet)의 ‘사냥꾼의 귀환’(Ruckkehr von der jagd) 1828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민의 삶은 늘 곤고하다. 18세기 말, 대혁명을 겪었지만 그 혁명의 주체 세력은 부르주아지였고 그들은 혁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래의 귀족처럼 여전히 힘없는 서민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세력다툼으로 혼란이 가중되자 나폴레옹이라는 군인이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쥐었고 마침내 황제까지 오르는 그야말로 혼란과 무질서의 시대가 이 그림의 시대적 배경이다.

어디에선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전의 왕족, 혹은 귀족(쿠데타로 귀족이 된)의 마차가 마을 가운데를 지나간다. 퇴락한 마을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사냥꾼의 무리들은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치장하고 있다. 6마리의 말이 마차를 끌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귀족의 마차일 가능성이 크다. 마차 위에 붉은 옷을 입고 앉아있는 호위병들로 보아 나폴레옹의 추종세력이거나 아니면 그와 유사한 권력을 지닌 인물이 마차에 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듯 그림을 그린 이 사람은 프랑스 화가 Carle Vernet이다. 베르네는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출신의 화가이다. 당시 유명한 풍경(속) 화가였던 아버지 Claude Joseph Vernet 로부터 일찍부터 그림을 배우게 된다. 이탈리아 여행 후 베르네는 당시의 전통적인 풍속화로부터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데 바로 여러 사람의 움직임이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그림으로서 Triumph of Aemilius Paulus의 장면이다. 이 그림은 로마시대에 마케도니아와 전쟁에서 승리한 에밀리우스 파울루스 장군의 개선을 축하하는 행렬의 그림으로 가로 4m 38cm이며 세로 130 cm 되는 대형 그림이다. 기원 전 168년의 역사적 장면이 베르네는 특유의 역동적인 느낌으로 되살려 낸 것이다.

동네 가운데 평화롭게 놀던 거위 떼는 혼비백산하고 개는 이리 저리 뛰고 있는 가운데 이층에 있던 아낙은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 마차 옆에는 걸인이 모자를 들고 구걸을 하고 지나가던 행인은 멀찌감치 피해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나폴레옹 1세가 연합군에 의해 퇴위되고 나폴레옹의 하나뿐인 아들(나폴레옹 2세)은 멀리 오스트리아에서 있던 혼란의 시기, 혁명의 짙은 그늘은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트렸지만 여전히 권력의 주변부에 있던 누구는 사냥을 하고 어떤 마을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혁명의 결과로 등장했던 나폴레옹의 몰락은 프랑스의 근간을 흔들었고 이어지는 잦은 혁명의 터를 제공하기도 했다.

베르네의 누이는 대혁명공간에서 기요틴(단두대)에 의해 처형되었는데 이 충격으로 베르네는 한 동안 그림을 접었으나 French Directory(나폴레옹의 쿠데타로 성립된 정부)시절 다시 그림을 시작하면서 그림의 스타일이 더욱 빠르고 순간적인 장면의 포착에 집중하게 된다. 이를테면 움직이는 말의 근육이 꿈틀거리고 거위가 혼비백산하는 순간을 그림으로 옮김으로서 그림 자체에서 역동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나 있는 길을 중심으로 하여 6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는 마치 타임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물체처럼 보인다. 살아있는 움직이는 듯 한 말 근육의 역동성에 부가되어 있는 시간성은 뒤쪽의 색채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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