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차 대전 당시 사막의 여우라고 불리기도 했던 독일의 명장 롬멜 장군, 그도 나치 당원이긴 했으나 마지막에는 히틀러를 제거하는데 가담했다가 자결을 강요당했다. 그래서인지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렇게 혹독하지는 않다. 롬멜이 아프리카 군단을 지휘하며 영국군을 상대로 연전연승할 당시다. 참모 회의를 하는데 육사를 수석 졸업한 젊은 장교가 지시 사항을 메모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힐책하였다.

“자네는 왜 작전 계획을 적지 않는가?”

“네, 저는 모든 사항을 정확히 암기할 수 있습니다.”

“어떤 뛰어난 암기력도 기록보다는 정확할 수 없다네.”

군사 천재로 불린 롬멜은 반드시 참모들과 숙의해서 계획을 수립했고 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메모토록 했다. 기실 롬멜도 육사 수석 졸업생이었다.
본부 상황 장교로 복무하고 있었던 때 이야기다. 가끔씩 총장이나 작전부장 같은 고위 장성들이 순시 오면 상황실장 조 대령은 장군의 뒤를 바짝 따르고 상황장교인 나는 두어 걸음 뒤에서 다소곳이 수행하는데 각자의 손에는 수첩이 들려있다.

대부분 장군들이 상황실에 내려오면 꼭 무엇인가를 지시 했다. 그날 장군도 마찬가지였다. 조 대령은 즉각 ‘네, 알겠습니다. 실시하겠습니다!’ 하면서 수첩에 기입한다. 나도 따라 수첩에 기록한다. 장군이 떠난 후 조 대령이 물었다.

“이 대위, 방금 지시 사항이 무엇이었지?”

“저는 기계음 때문에 잘 듣지 못했습니다만, 실장님은 기록하셨지 않습니까?”

“아, 나도 잘 못 들어서, 대강 기록하는 체 했지. 자네도 무엇인가 적지 않았나?”

“저도 낙서만 했습니다. 어차피 장군님은 조금 지나면 다 까먹지 않을까요?”

“그래, 그렇겠지?”

우리 예상은 맞았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요즈음 대한민국 최고위급 공직자들이 수첩에 다소곳이 열심히 기록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자리에 또 노트북까지 놓여있다. 노트북이란 우리말로 공책이니 큰 수첩 정도 되겠다. 받아쓰기 장비가 이중으로 장착되어 있는 셈이다. 일방적인 받아쓰기는 위의 상황실 장교들의 메모 따위가 되기 십상이다. 일방통행적인 지시는 대화도 아니고 토론도 아니며 인간의 본성에 맞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란 원래 부족한 존재라 서로 간 약점을 보완하며 진화해 온 것이고 그 기제는 ‘토론과 대화’였던 것은 자명하다. 고대 신라시대에서도 진골 계급 내부 합의체인 화백제도가 있어 토론이 활성화되어 있었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세종대왕은 몇 날 몇 달을 신하들과 토론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매사가 그러하듯이 정치도 중앙의 행태를 본받기가 쉽다. 사천 시정에서는 중앙의 토론 실종 정치는 답습하지 말기 바란다. 활달한 토론 문화가 꽃피우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대화나 토론 없이 어떻게 다른 이들의 지혜를 빌릴 것인가?

사족을 달자면 카네기는 자기의 묘비명에 이런 말을 남겼다.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줄 알았던 사람!’

소통이 없으면 사람과 두루 통할 수도 없고 인재를 찾을 수도 없다. 장관 자격은커녕 국민자격도 없는 이들이 등장한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문득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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