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밑에서 바느질하는 여인(Junge Frau, beim Schein einer Lampe nähend) 1823

매우 현대적 느낌이 나는 스탠드 밑에서 뭔가를 꿰매고 있는 여인이 있다. 등불은 지금처럼 전기를 이용한 것은 아니지만(아마도 아크등으로 추정) 바느질하기에 충분히 밝아 보인다. 탁자 위에는 가위며 실 꾸러미가 보이고 스탠드 옆으로 옷을 재단하는데 필요한 핀 꽂이도 보인다.

아마도 이 여자는 바느질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인 모양인데 바구니에 아직 해야 할 일감이 조금 있어 보인다. 그런가하면 탁자 위 선반에 있는 두꺼운 책으로 미루어 무엇인가 다른 분야에도 깊은 관심이 있다.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케르스팅(Georg Friedrich Kersting)은 1918년까지 있었던 메클렌 부르크 슈베린 대공국(지금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로 바뀜)으로 존재하던 북독일 지역의 Güstrow에서 1785년 유리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덴마크의 코펜하겐 아카데미에서 미술공부를 하였고 여기서 그는, 그의 전체 작품에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투명한 색채의 사용에 대한 감각을 배우게 된다. 이는 당시 덴마크 미술의 특징으로서 그 뒤 독일 미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케르스팅은 당시 화가들 중에서 데생실력이 뛰어나 덴마크 학교 재학시절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이 데생실력은 그의 그림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데생실력이 그림 내부에서 하나의 정형성을 띄게 되고 그 정형성은 각각의 그림을 넘어 새로운 예술적 프레임으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당시 비더마이어 양식의 정신과 맞아떨어지게 되고 케르스팅은 이 예술양식에 공헌하게 된다. 회화에서 비더마이어 양식이란 1848년 이후 일정시기 오스트리아에서 발흥한 회화양식으로서 경건한 일상의 느낌과 안락한 보통사람의 삶을 나타내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는 예술운동으로서 대표적인 화가로는 칼 스피츠베그 (1808-1885), 페르디난트 게오르그 발더 뮐러 (1793-1865)등이 있다.

▲ 등불 밑에서 바느질하는 여인(Junge Frau, beim Schein einer Lampe nahend) 1823
사실 비더마이어 양식은 산업혁명 이후 새롭게 형성된 중산층들이 향유한 문화의 한 갈래로서 시작되었는데 지금까지 예술의 단순한 관람자였던 중산층들의 의견이 반영된 예술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의 수상이었던 메테르니히(반동정치)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중산층 중심의 예술운동을 장려하였고(상대적으로 귀족의 세력을 누르기 위해) 그 결과 프로이센,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 당시 합스부르크의 지배하에 있던 여러 나라의 예술운동으로 번져 나가게 된 것이다. 비더마이어는 문학, 건축, 음악 등으로 나타났고 그 중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부문은 실내 장식과 가구제작 이었다.

이 그림에서도 천정으로부터 드리워져 있는 커튼의 모양과 끝 부분의 장식, 그리고 벽의 질감과 색채의 조화에 맞는 탁자의 배치는 전형적인 비더마이어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또 그림의 주인공을 보고 있는 화가의 시선과 스탠드로부터 번져 나오는 광량의 조절은 비더마이어 양식이 추구하는 안락한 일상의 행복과 경건함 바로 그 자체이다. 따라서 케르스팅이 꿈꾸었던 미적인 성취는 경건한 삶 속에서 편안함(Gemütlichkeit)과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느낄 수 있는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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