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 하원수 사천지사장 인터뷰]
“건강보험은 ‘재분배’ 기능, 많이 벌면 많이 내어야”

▲ 국민건강보험공단 하원수 사천지사장
연매출액 400억 원이 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61)씨. 그는 아들 명의의 수십 억 원 대 건물도 가졌다. 하지만 그가 내는 건강보험료는 고작 8000원 남짓이다. 회사에서 받는 월 급여가 10만 원뿐인 걸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은 3만3000원의 건보료를 낸다. 원래 이 정도 재산을 지닌 지역가입자라면 80만 원이 넘는 건보료를 내어야 하지만 건물을 관리하는 근로자로 등록해 월급 110만 원의 직장가입자가 됐기 때문이다.

반면 월 소득 1000만 원이 될 듯 말 듯 한 일용직 가장이 일정한 보증금과 월 임대료를 내는 집에 가족과 살면서 낡은 자동차를 가졌다면, 그가 내어야 할 건보료는 얼마일까? 최소 몇 만 원으로 결코 적지 않는 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설명이다. 두 경우가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탓에 최근 들어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마침 지난 11일에는 정부, 학계, 노동계 등으로 구성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단장 이규식)이 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의 기본방향을 정리했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나뉘어 다소 복잡해 보이는 부과체계를 소득 기준 부과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게 기본방향인 듯하다. 하지만 수십 년 이어진 제도에 변화를 주는 것이 쉽지 않을 터,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하는 눈치다. 이에 건강보험공단 하원수 사천지사장을 만나 건보료 부과체계를 비롯한 건강보험 전반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에 관해 말이 많은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크게 보면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이원화 된 데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은 1977년부터 직장가입자를 중심으로 가입하기 시작해 1989년 도시 지역가입자가 들어오면서 전 국민으로 확대됐다. 이 과정에 보험급여 즉 의료서비스를 받는 기준은 전 국민이 같지만 보험료 부과체계는 가입자 자격과 소득 등에 따라 7개로 나뉘어 다소 복잡해졌다. 이에 관련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

그렇다면 현행 보험료 부과체계는 어떻게 되나?
=먼저 직장가입자는 보수에 보험요율 5.99%를 일괄적으로 곱해 부과한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종합소득이 500만 원 이하인 세대와 초과 세대를 구분해 소득, 재산, 자동차, 생활수준, 경제활동참가율 등 부담 능력을 감안해 보험료를 부과한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가 불공평하다는 주장의 구체적 사례는?
=지역가입자는 재산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재산을 가졌더라도 직장가입자인 부모 또는 자식의 피부양자로 들어가 버리면 일정금액 이하 재산에 대해선 보험료를 전혀 내지 않는다. 반대로 은퇴 후 일정한 수입 없이 자신 소유의 집과 자동차만 가졌다 해도 지역가입자로 남아 있으면 상당한 보험료를 내어야 한다. 집을 팔 수도 없는 처지에서 또 다른 사회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들어 보험료 체납세대도 늘고 있다던데...
=보험료 부과체계가 가입자의 부담능력을 적정하게 반영하지 못해 체납세대가 해마다 늘고 있다. 특히 생계형 체납자가 늘고 있는데, 올해 2월 기준으로 6개월 이상 체납한 세대가 154만 세대로 금액이 2조1052억 원이다. 이 체납세대 가운데 68.5%(105만 세대)는 월 보험료가 5만 원 이하로 생계형 체납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를 두고 국제적 관심이 높다던데, 허점 또한 이리 많나?
=세계의 여러 개발도상국은 물론이고 세계은행(World Bank)과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우리 건강보험제도에 관심이 많다. 이 제도의 세계 수출도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 제도의 부족한 점을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보험료 부과체계의 개선 방향은 어찌되나?
=전 국민이 동일한 보험급여 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보험료도 동일한 기준으로 부과하겠다는 거다. 간단히 말해 재산 기준에서 소득 기준으로 바꾼다. 예전엔 소득 파악이 잘 안 돼 힘들었으나 지금은 소득자료 보유율이 95% 정도로 꽤 높아졌다. 지금까지 금융소득에는 보험료를 부과하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가능해질 전망이다.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피부양자들도 많이 줄게 될 것이다.

가입자들은 바뀌는 제도로 인해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떤가?
=그동안 공단에서 모의실험을 여러 차례 해봤는데 전체의 80% 정도는 보험료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반면 직장을 다니면서 소득도 많은 경우는 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다. 건강보험제도는 사회보장적 성격이 강한 만큼 ‘재분배’ 기능이 크다. 결국 잘 사는 사람이 더 내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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