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주의(表現主義, Expressionismus)는 20세기 미술사를 구획하는 중요한 용어들 중의 하나이다.

표현주의의 선구는 많은 이견에도 불구하고 Vincent van Gogh(1853~1890)와 Paul Gauguin(1848~1903)이라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반 고흐 스스로도 인상주의 전통에 속해 있다고 생각했고 외광파의 그것처럼 밝은 색채를 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그의 감성적, 상징적 특성은 색채를 단지 빛을 표현하는 것에만 한정하지 않고 대상에 대한 독자적 해석(왜곡과 부분 확대)이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또, 고갱은 엄밀한 의미에서 표현주의자는 아니지만 미적 감각의 발현수단으로 표현주의의 중요한 요소인 ‘상징’성을 그의 회화에 부가시켜 ‘표현주의’의 시작을 알린 화가임에 분명하다.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는 표현주의 회화의 대표적 화가로서 오스트리아 남부 툴른(Tulln) 출신이다. 1909년 또 한명의 뛰어난 오스트리아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의 초청으로 비엔나의 Kunstschau에 참가한 쉴레는 Edvard Munch, Jan Toorop,  Vincent van Gogh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기괴한 선과 갈색 톤의 색채, 그리고 휘고 비틀어진 면들은 이러한 영향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그림의 제목은 고통(Schmerz)이다. 그것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표현한 그림이다. 늙은 사제가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젊은 사제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장면이다.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갈색은 Edvard Munch가 그랬던 것처럼 생명뿐만 아니라 매장의 상징성으로 죽음의 개념과 연결시킬 수 있다. 그 갈색의 바탕위에 붉은 색과 검은 색이 모자이크처럼 더해져 젊은 사제가 당면하고 있는 강렬한 고통과 그것을 위로하는 늙은 사제의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쉴레와 Gustav Klimt 와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거의 서른 살이나 많았던 클림트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선생과 제자로 시작한 관계는 쉴레의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그림의 늙은 사제가 클림트이며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젊은 사제는 쉴레 자신의 모습이라고 쉴레 스스로 이야기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쉴레는 스페인 독감으로 그의 임신한 아내가 죽고 3일 뒤에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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