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나는 자전거 타기에 한창 빠져있다. 한강을 도보 5분 거리에 두고서 왜 난 그동안 자전거를 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지? 생각하며 뒤늦게 자전거 라이딩족에 합류했다. 처음엔 30분 타는 것도 진땀이 났지만, 지금은 두 시간은 거뜬히 달리게 됐다.

그러기를 두 달째, 거의 매일 자전거 주행으로 아침 저녁의 한강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대교들의 위치와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고, 그 대교들이 서로 다른 모양과 불빛으로 디자인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침 공기와 밤 공기, 비 온 뒤 촉촉해진 공기를 느끼고, 가을밤의 미세한 온도차를 구분하게 됐으며, 강변에 나들이 오는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어느 아침, 그 날도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던 중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도로에서 빵빵거리는 자동차들을 내가 극도로 싫어해서인지, 사람이 앞을 지나가면 자전거 운전자로서 난 벨 울리기보다 웬만하면 속도를 줄이거나 피해 가는 편이다. 그러다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이들과 마주쳤다. 휴일 아침, 한강 어귀에서 작은 행사를 치루는 모양이었나 싶다. 별 위협도 안 되게 달려오는 내 자전거쯤은 잊을 정도로 친구와 대화가 즐거웠는지, 몇 명의 여학생들은 내 앞을 갑자기 가로 질렀다.

나는 급정지해야 했고 날 놀라게 한 것이 미안했는지, 다시금 달려가는 내 뒤에서 한 여학생의 활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그 목소리가 너무도 밝고 명랑해서, 뜬금없이도 난 갑자기 슬퍼졌다. 아침부터 달리며 눈물바람이었다. ‘그 날’ 이후로, 이렇게 내 눈물바람이 엉뚱하다.

배 안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찍은 마지막 동영상을, 나는 이제야 보았다. 공개되던 직후엔 가슴이 아파서 도저히 볼 용기가 없던 것을, 뒤늦게서야 봤다. 그 영상 속에서 거친 남학생의 목소리는 “나 무서워. 나, 나, 나, 살고 싶어요”. “내가 왜 수학여행을 와서!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 살고 싶은데!”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영상 속에서 얼굴은 목소리만큼 또렷하게 찍혀있지 않았다. 평생 만나본 적도, 마주쳐본 적도 없는 그를 목소리로만 그렇게 만났다. 만났다고 하기엔 너무도 연약한 만남이지만, 이렇게나마 그 목소리를 만났다. 살고 싶었을, 아주 살고 싶었을 그를.

그 아침 한강 공원에서 “죄송합니다”라고 소리친 여학생의 얼굴을, 난 끝내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눈물이 났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누가 들으면 황당할 정도로 세월호 학생들과 이 여학생이랑은 상관이 없지만, 어쩌면 상관이 아주 많아서였다. 그 날 공원에서의 여학생의 목소리, 그리고 ‘난 살고 싶다’고 말했을 세월호에 탄 학생들의 목소리가 아주 닮았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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