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은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현미경으로 1,000배 확대해서 보면 약 1 mm 정도의 크기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작고 가장 간단한 생물체인 세균이 지구상에 몇 종이 존재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우리가 상상하는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세균들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측만 할 뿐이다.
세균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별로 좋지 않다. 세균이 일으키는 여러 가지 질병 때문에 더럽고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세균에게 얻는 유용한 물질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김치에 들어 있는 유산균이나 메주 혹은 청국장을 만드는 고초균이 없다면 한국인의 밥상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해가 되는 세균도 있고 또 이익이 되는 세균도 있는 것이다. 해가 되든지 이익이 되든지 간에 우리는 이 세균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이란 이름을 가진 세균은 식중독을 일으킨다. 보툴리눔이란 말의 어원은 소시지를 가리키는 라틴어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아마도 상한 소시지에서 이 균을 처음 분리해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리라. 이 세균은 보통 공기 중에서는 자라지 못하는 ‘혐기성 세균’이다. 주로 소시지나 통조림을 만들 때 멸균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 세균은 내생포자를 형성하고 있다가 왕성하게 번식을 하면서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를 만든다.
이 독소에 중독이 되면 처음에는 피곤을 느끼며 두통과 현기증이 온다. 목의 점막이 건조해지며 목이 수축하는 느낌이 들고, 삼키거나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가장 위험한 것은 호흡근육이 약화되어 호흡곤란을 일으키게 되어, 심한 경우 호흡근육의 마비로 인해 중독 환자의 반 정도가 사망하게 되는 무서운 독소이다.
미국 엘러건 제약 회사는 이 독소를 정제하여 치료용으로 개발하였다. 근육의 마비를 일으키는 독소의 성질을 이용하여 질병의 치료제로 개발한 것이다. 이렇게 개발된 상품의 이름이 바로 보톡스(Botox, Botulinum Toxin의 약어)이다. 소량의 보톡스를 일정 부위에 주사하면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억제해 근육 수축을 막아주기 때문에 심각한 근육 경련이나 다한증의 치료에 사용된다.
이 보톡스를 얼굴 주름을 치료하는 미용 목적으로도 사용한다. 보톡스 주사 후 대략 3~7일이 경과하면 효과가 나타난다. 젊어 보이려는 ‘동안 열풍’으로 보톡스의 판매는 급성장하고 있다. 하나의 세균이 만드는, 어쩌면 생명을 위협하는 독소가 주름살을 펴고 젊어 보이려는 미용에 사용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일까? 자연이 우리에게 준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용하고 사용하는 가에 따라 득도 되고 실도 될 수 있음을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