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경상대학교 미생물학과 교수
진화생물학자들이 갖는 의문점 중의 하나는 폐경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생물들은 일생동안 생식 능력을 그대로 유지한다. 반면에 유독 인간의 여성은 호르몬의 변화로 인하여 배란과 월경이 멈추고 출산할 능력을 더 이상 갖지 못하는 폐경기를 갖게 된다. 생물은 생존하기 위해 진화를 계속하여 왔다고 전제할 때, 또한 생산 능력이 있는 자손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생존에 유리하다면, 왜 사람에게는 폐경기가 있는 것일까?

사람의 진화에서 가장 도드라진 특징을 하나 꼽는다면 어떤 동물보다 더 큰 뇌를 가졌다는 것이다. 뇌가 크게 발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영양분이 필요하다. 사람은 뇌의 발달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기 위해 엄마에게 의존하는 시간이 다른 생물보다 훨씬 길어, 젖을 떼었더라도 한참 동안을 엄마의 보살핌을 받아야한다. 다른 말로 바꾸면, 엄마의 보살핌이 확장되도록 진화하였다는 것인데,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해 적은 수의 아이를 낳더라도 엄마의 보살핌이라는 에너지의 투자를 받아 생존할 기회가 증가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폐경기는 사람의 진화과정에서 어떤 점이 유리했을까? 진화생물학에서는 이른바 “할머니 가설, Grandmother hypothesis)”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여성이 아이들을 더 많이 낳는다면, 장시간동안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자식의 생존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임신 능력을 상실한 할머니는 자기 손자들을 키우는데 기여할 수 있다. 폐경기를 지낸 할머니가 손자를 보살피는 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이익이 될 수 있다.

첫째는 노동력의 문제이다. 만약 여성이 아이를 낳고, 또 그의 딸이 아이를 낳는다면, 엄마와 딸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음식물을 얻기 위해 각자 노동을 해야 한다. 비슷한 시기에 두 사람이 출산 하였다면,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아이를 보살피느라 음식물을 얻기 위한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이므로 결국은 충분한 에너지를 제공 할 수 없게 되어 생존에 불리하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아이들을 돌보고 나머지 한 사람이 노동을 한다면, 아무래도 자신의 자식에 대한 편애가 없을 수 없다. 할머니가 임신 능력이 없다면 손자를 돌보고, 노동력이 훨씬 좋은 젊은 딸은 음식물을 얻기 위한 활동을 안심하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

두 번째는 유전자의 관점이다. 여성은 자기 유전자의 반을 자식과 공유하고, 1/4은 손자와 공유한다. 따라서 두 명의 손자를 갖는다는 것은 한명의 아이를 출산하는 것과 같은 수의 유전자를 미래에 남긴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비록 폐경기로 아이를 낳을 수 없을 지라도 지속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아이들의 수가 증가된다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사람의 진화과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은 할머니의 몫이었다.

최근 유치원 보육교사의 폭행이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사회가 변화하여 아이를 보육기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시절에 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믿고 맡긴 보육기관에서 아이에게 부모 몰래 폭행이 일어난다는 것은 정말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사회가 변한 지금, 할머니가 육아를 맡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임에 틀림이 없다. 사족하나 붙인다면, “할머니 유치원”이 어디 없을까? 보육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계신, 또 교사 경력이 있으신 할머니가 훈육하는 유치원이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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