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지사의‘무상급식중단’억지를 접하고

학교에서 날아오는 모든 공문을 열심히 챙겨보는 ‘열혈맘’은 아니지만 냉장고에 붙여놓고 가장 소중히 간직하는 공문이 있다면 바로 급식표(식단표)다. “오늘은 돼지고기 야채볶음이네 맛있었어?” 물어보기도 하고, 엄마들끼리 “○○학교는 급식이 진짜 맛있다더라” 하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여중 3학년인 우리 딸은 식단표를 오려서 자기가 먹고 싶은 반찬에 형광펜으로 색칠을 해 간직할 정도다. 딸에게 물으니 친구들 대부분이 그렇게 한단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집이 잘살든 못살든 구분이 없단다. 도시락 반찬으로 살림살이가 드러났던 우리 때와는 다른 모습이라 한편으론 순수해보이고 다행이란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아이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급식에 갖은 핑계와 말 바꾸기를 반복하며 장난치는 이가 있어 황당하고 아이들에게 부끄럽다. “엄마는 왜 저런 사람을 뽑았냐”는 짜증도 애에게서 듣는다. 왠지 줬다가 뺏는 기분이란다.

이를 어찌 설명해야 될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교육청이 감사를 거부했다거나 복지예산이 부족해 그렇다는 홍 지사의 주장, 그것이 타당한 것일까? 아이에게 설명해줄 논리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이런 내용이 있었다. 홍 지사가 ‘지방선거를 앞둔 2014년 2월에 도교육청과 동등한 기관으로 <학교무상급식 지원 합의서>에 서명까지 하며 약속했다’는 것. ‘재정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확대하겠다’는 게 골자다.

우와 놀랍다. 그럼 홍 지사는 지금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버린 것 아닌가. 권력을 가진 자가 약속을 갑자기 뒤집을 때는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또 뭘까? 혹시 자신과 생각이 다른 교육감이 당선돼 길들이기 차원의 갑질? 이참에 시장군수, 도의원들 중 누가 내 말을 잘 듣고 거역하는지 살피는 시험? 그것도 아니라면 어느 날 중앙에서 밀려나 예전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아 생기는, 연예인들이 자주 걸린다는 관심병? 백 번 양보해 정치인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래도 아이들의 밥 가지고 자기 정치욕심 채우는 건 아니지 않나.

학교는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기르자는 곳이다. 그래서 의무교육에 무상교육까지 도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수돗물로 배 채우며 얼마나 어렵게 공부했는데’ ‘학교는 공부하러 오는 곳이지 밥 먹으러 오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도지사. 자격이 있는 건가? ‘그래, 도정 잘 이끌어 세계 최고로 질 좋은 급식을 만들어 줄게’ 하는 미래 지향적인 도지사면 얼마나 인격이 있어 보일까? 경남이 이런 격 낮은 일로 전국에 이름을 떨치고 있어 서글프다.

중3과 7세 자녀를 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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