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땅· 거친 환경, 그럼에도 한없이 높고 컸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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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땅· 거친 환경, 그럼에도 한없이 높고 컸던 문화
  • 하병주 기자
  • 승인 2015.05.07 14: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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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진주박물관-뉴스사천 공동기획] 사천, 그 3000년의 시간을 더듬다
③ 국제 무역항 ‘늑도’

연륙교 공사 당시 수만 점 출토된 유물들은 늑도가 2000여년 전 국제무역항으로 이름 떨쳤음을 보여준다.
국립진주박물관이 4월 16일부터 7월 9일까지 제12기 박물관대학을 운영한다. 주제는 ‘사천(泗川)’이다. 본촌리 유적과 이금동 고인돌 등 청동기시대에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사천 3000년의 역사를 아우른다. 뉴스사천은 박물관의 협조로 강의내용을 정리해 지면에 옮긴다.(편집자주)

(강사 : 국립진주박물관 이동관 학예연구사) 사천시 삼천포항의 서쪽, 남해군 창선도 중간에 있는 섬 늑도. 주위로 초양도, 신섬, 학섬, 모개섬, 마도, 저도 등과 어울려 있으면서, 남해안에서는 해류가 빠르기로 유명한 곳이다. 늑도라는 지명은 섬의 형태가 마치 소의 굴레처럼 생겼다고 해서 굴레섬이라고 하다가 고려시대에 구라도(九羅島)라고 했으며, 뒷날 한문으로 고쳐서 늑도(勒島)라고 고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늑도는 길이 970m, 너비720m, 면적 420ha의 작은 섬이다. 그러나 몸집이 작다고 쉽게 볼 섬은 아니다. 몇 차례 발굴조사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 수만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양이 1톤 트럭으로 수십 대 분량이었다니 섬 자체가 선사시대 박물관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럼에도 늑도유적의 진면목은 출토된 유물의 양에 있다기보다 다양성에 있다. 중국 한무제 5년(BC 108년)에 주조된 반량전, 일본의 야요이계 토기, 기원전 1세기 경으로 편년되는 낙랑토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점으로 인해 늑도는 2000여 년 전 바닷길을 이용해 활발한 교육이 이뤄졌던 국제적 무역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남도기념물에서 국가사적으로
늑도유적은 1979년 7월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민속문화 채집 차 늑도를 조사하던 전 국제신보사 기자의 제보로 알려졌고, 당시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는 다수의 무문토기 등에서 살필 때 청동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초기철기시대 자료임을 밝혔다. 1985년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해 패각층이 드러난 지역을 중심으로 경남도가 기념물 제75호로 지정해 보존토록 했다.

▲ 늑도에서 출토된 토기들.
당시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부분적인 발굴조사를 벌였는데, 초기철기시대 패총을 비롯해 주거지와 옹관묘 35기, 토광묘 38기 등의 유구와 토기, 골각기, 석기 등의 유물이 수습됐다.

늑도유적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은 1998년 사천시 대방동과 남해군 창선면을 잇는 국도3호선의 연륙교 가설 공사구간에 늑도유적 일부가 포함되면서다. 이에 부산대학교박물관, 동아대학교박물관, 경남고고학연구소(현 삼강문화재연구원)가 세 지구로 나눠 발굴조사를 진행했는데, 이때 역시 초기철기시대 생활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쏟아졌다. 문화재청은 2003년 6월 늑도를 국가사적 제450호로 승격해 지정하기에 이른다. 면적은 24만7311㎡이다.

늑도는 사물국의 중심?
늑도유적의 출토유물은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을 전후한 시기로 편년됐다. 늑도의 대표적 토기인 삼각형점토대토기를 비롯해 다양한 토기와 석기류, 그리고 방추, 골제첨기, 골촉, 소도자, 녹각제 도자병, 각종 동물뼈와 어골류 등이 수습됐다. 앞서 언급한 반량전과 야요이계 토기, 낙랑토기 등 외국제품도 많이 나왔다. 특히 조사지역 서남쪽 끝부분에서는 소성된 점토덩이와 함께 야요이계 토기편이 발견됐는데, 이는 야요이계 토기를 구웠던 가마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태토와 색상 등의 특징에서 일본의 출토품과는 차이가 있었다.

▲ 교역의 흔적인 저울추(위)와 동전 변량전·오수전(아래)
진주박물관대학 이동관 학예연구사는 늑도유적을 두고 “그 규모나 성격상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포상팔국 중 하나인 사물국(史勿國)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사물국이나 사수현(泗水縣), 사천(泗川)과 같은 지명이 이두식 표현인 물과 관계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것’과 ‘남의 것’의 구분법
이동관 학예연구사는 이날 ‘우리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는 고고학적 방법론도 소개했다. 문화양식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교류나 교섭이 일어났을 경우 유물은 뒤섞여 발견되기 마련인데, 이럴 때 반입품인지 그 지역 생산품인지 어찌 구분하느냐에 관한 문제다. 먼저 반입품일 경우 ▲비보편적이고 ▲불안정적이며 ▲다른 유물이나 유구와의 관계가 모순적이라는 거다. 반대로 생산지에서 발견된 유물이라면 보편적이고 안정적이며, 모순적이지 않을 것이다.

▲ 늑도에서 출토된 중국계 유물 자안패(위)와 상감관옥(아래).
이런 고고학적 대전제에 비춰보면, 야요이계 토기가 한반도에서 몇 점 발견됐다고 해서 그 옛날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설령 야요이계 가마터가 발견됐다고 해도 늑도에서의 가장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토기는 삼각형점토대토기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주장은 억지일 뿐이다.(임나일본부설 : 4세기중엽~6세기중엽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방을 통치했다는 설)

재밌는 사실은 한반도와 가까운 일본의 이끼섬이 늑도와 아주 흡사하다는 점이다. 다양한 외국계 유물이 출토되고, 또 그 유물의 시기로 봐서 초기철기시대에 늑도와 교류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는 것. 다만, 유물의 절대적 양이 정반대라고 한다. 이끼섬에는 일본의 양식이 대부분이고 늑도계 유물은 아주 소수라는 것. 교류가 있었다고 하나 엄연히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 것이다.

보잘 것 없이 작지만 한없이 컸던 섬 늑도. 거친 물살에 둘러싸여 오로지 교역으로 생존을 이어갔던 늑도 주민들은 기원에 접어들며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전염병이라도 돌았던 것일까 아니면 대형 자연재해가 있었던 것일까. 늑도의 수수께끼는 현재진행형이다.

▲ 옹관묘에서 인골과 함께 발견된 개의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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