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네 에베르(Ernest Hébert)의 고전적 감각이 돋보이는 말라리아(La Mal'aria 1850)

배 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일가족 인 듯 보이지만 일가족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구성이 애매한 면이 있다. 한 명의 남자는 선채로 배의 돛대를 잡고 돌아서 있고 다른 한 명의 남자는 모자를 쓴 채 앉아 있지만 뭔가 어두운 느낌을 준다. 그 옆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와 얼굴을 제외한 온 몸을 감싼 여인이 있다. 반대편에는 이들과는 사뭇 다른 자세로 앉아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칙칙하여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그림의 제목은 La Mal'aria (말라리아)인데 모기에 의해 옮겨지는 바로 그 전염병을 말한다.

이 그림을 그린 에르네 에베르(Ernest Hébert 1817~1908) 프랑스 남동부 그르노블(Grenoble)에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법률 공부를 위해 파리로 왔지만 그는 곧 위대한 조각가 David d'Angers(다비드 당제)와 역사화가 Paul Delaroche(폴 드라로쉬)의 교육과 영향으로 화가가 된다. 22살의 젊은 나이에 당대 최고의 예술상으로 불렸던 로마대상(Grand Prix de Rome)을 수상하여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가의 예술을 깊이 연구하게 된다. 이러한 영향으로 그는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미학이 느껴지는 그림을 많이 그렸기 때문에 19세기 상류층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

19세기 말 공화정과 왕정복고를 반복하던 프랑스 민중의 삶은 피폐, 그 자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프랑스는 대외적으로 제국주의 정책에 따라 아프리카에서 세력 확장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 결과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프랑스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들의 풍토병에 가까웠던 말라리아가 프랑스에도 창궐하게 된다.

그 참담하고 어두운 세계를 낭만적 분위기와 고전적 터치로 그린 이 풍경은, 그림의 소재와 주제에서 오는 슬픔과 우울의 느낌을 받는 동시에 화면의 구성에 있어서는 고전의 견고한 구도와 색채의 두터움을 동시에 느끼는 상반된 경험을 하게 한다. 이 그림에서도 프랑스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인물이 세 명이나 등장하는데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의 양쪽에 있는 사람은 아마도 북 아프리카 이주민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에베르는 드물게 매우 장수하며 살아 영광을 누린 흔치 않은 예술가인데 1867년경과 1885년경 두 차례에 걸쳐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Académie de France à Rome)의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1908년 9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는데 그 중에는 “하렘의 여시종(La Servante du Harem, 1874)”을 그린 바르비종파(École de Barbizon)의 대표적 화가 폴 트루이베르(Paul Trouillebert, 1829~190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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