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6월 29일은 의미심장한 날이다. 1987년 시민들의 6월 항쟁의 결과로 ‘6.29 선언’이 발표된 날이다. 이 선언으로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권리를 다시금 되찾았다.

2002년 6월 29일은 중요한 두 사건이 겹쳐진다. 2차 연평해전으로 6명의 해군장병이 전사하였고, 저녁에는 역사적인 월드컵 4강 진출 신화가 이루어진 날이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인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1989년 12월 1일 문을 연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설계, 설계변경,  감리, 가사용, 준공검사, 증축의 과정에서 누적된 비리와 부실이 빚어낸 결과였다. 돈에 눈먼 경영자는 4층까지 설계되었던 건물을 5층까지 올리는 무리수를 두었고 매장 공간 확대를 위해 끊임없이 구조를 변경했다. 비리와 부실이 낳은 예고된 참사였고 요즘 유행하는 낱말인 소위 적폐의 소산이었다. 삼풍백화점의 이준 회장은 일제 강점을 막기 위해 헤이그에 고종의 밀사로 파견되어 순국하였던 이준열사와 얄궂게도 동명이인이나 행적은 정반대였다. 왜정의 밀정 노릇에다 중앙정보부 창설 멤버였던 그는 전형적인 부패 정치인, 사업가였으니. 당시 붕괴사고로 502명이 죽었고, 6명이 실종됐으며 937명이 다친 이 엄청난 인명피해를 뻔히 목도하면서도 경찰서에 출두한 그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보쇼. 무너진다는 것은 손님들에게도 피해가 가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
그에게 있어 사람의 가치는 돈에 비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당일 오후 5시40분 ‘붕괴가 진행되는 것 같다’는 보고를 받고는 이준과 경영진들은 안내방송도 하지 않은 채 황급히 백화점을 빠져 나갔다. 7분후 건물은 무너지기 시작해고 백화점이 폭삭 사라지는데 걸린 시간은 20초에 불과했다. ‘가만히 있어라!’하고는 자신들의 몸만 빼서 승객과 배를 버린 세월호 선원들과 판박이다.

이제는 주춤한 것 같은데도 메르스 충격은 가실 줄을 모른다. 식당가는 여전히 파리만 날리고 병원은 아직도 한산하다. 그런데도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청와대와 여당 사이의 정쟁은 점입가경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를 뒷받침해야 할 여당 원내대표가 엇 발을 낸다고 여기고 함께 갈수 없다고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정부 때 대통령의 주요사업이었던 세종시 수정안을 직접 반대 토론에 나서기까지 하며 기어코 부결시킨 사람은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여당의 박근혜 의원이었다. 당시 박 의원은 현재의 유 원내대표와는 정치적 비중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컸고 44명의 친박계 의원들이 동조해 반대표를 던졌다. 문득 따져보니 그 날도 6월 29일, 201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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