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졌던 100년, 곤양 옛 사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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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졌던 100년, 곤양 옛 사직단
  • 하병주 기자
  • 승인 2015.07.08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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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박물관, 3월 학술연구 중 발견
사천시 “발굴정비계획 수립 검토”

국립진주박물관이 발견한 곤양 사직단 흔적. 사진 가운데 권역 (사진=국립진주박물관 제공)
“종묘와 사직이 풍전등화에 있습니다~!” “종묘와 사직을 보존하옵소서!”

사극에서 종종 등장하는 대사다. 종묘가 선대 왕들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서 왕실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개념이라면, 사직은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稷神)을 가리킨다. 이는 곧 백성들의 안위를 기원하는 개념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에게 있어 왕실과 백성의 안위가 둘 다 중요했단 얘기는 오늘날에도 새겨봄직하다. 특히 임진왜란 중에도 사직 신위를 세자가 직접 받들고 지켰다니, 사직을 생각하는 정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헤아릴 수 있다.

문헌을 통해 확인되는 바로는 삼국시대부터 사직이 등장한다. 그리고 사직은 왕실 외에도 지방 행정단위인 주현(州縣)마다 세우게 됐고, 주현에선 해마다 두 차례 제를 지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8년에 일제강압에 의해 왕실은 사직제를 폐지하게 되는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직제와 제를 지내던 사직단은 급격히 흔적을 잃게 된다.

사천에서는 옛 사천현과 곤양현 두 곳에 사직단이 있었던 것으로 고지도를 통해 확인됐지만 그 모습이 드러나진 않았다. 그런데 최근 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에서 옛 곤양현 사직단 흔적을 찾았다.

위치는 곤양읍성 서쪽에 있는 맥사마을 뒷산이다. 진주박물관 임학종 학예연구실장은 “사천 역사 특별전을 준비하던 중 현장답사 과정에 사직단을 찾았다. 나무와 풀을 걷어내자 제물을 준비하던 예감 터와 사직단으로 오르는 세 계단, 그리고 볼록 솟은 사직단 형태가 오롯이 드러났다”며 발견 당시 상황을 전했다.

곤양 사직단(사진=국립진주박물관 제공)
그는 “근대화 과정에서 사직단 대부분이 훼손되거나 흔적조차 사라졌는데 곤양 사직단은 다행히 화를 면했다”며 “발굴과 정비를 거치면 옛 모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존재조차 잊고 있던 사직단 흔적이 확인되면서 사천시도 사직단 정비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사천시 문화정보과 제정건 과장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라며 “본격적인 발굴정비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진주박물관 측에 기본 방향 제시를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곤양 사직단이 제 모습을 갖추고 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고비가 많아 보인다. 사천시 김상일 학예사는 “무엇보다 곤양면민과 해당 지주들의 협조가 꼭 필요하다”며 협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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