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올 들어 벌써 세 번째 119 신세를 졌다. 최근엔 새벽 산책 중에 낙상을 해서 척추에 두 군데 금이 가서 이른바 ‘시멘트’ 시술을 받고 보호대를 차고 힘들게 지낸다. 요즈음 부쩍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고, 검은 옷차림의 장정들이 데리려 왔는데 당신을 들지 못해 그냥 갔다며 ‘좀 데려가지, 살 만큼 살았는데’하며 못내 아쉬워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모성애가 각별히 지극하다. 내가 잠시 감옥에 가 있는 한 해 겨울을 냉방으로 지냈다. ‘자식이 죄 없이 감옥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따뜻하게 지내냐고’하면서다. 출소 후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자식들을 위해 바친 희생과 고통에 대해 공치사하거나 생색내 본 적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강이 나빠진 후부터 자꾸 삶의 의욕이 약해지는 것 같다. 기력이 떨어져 자식의 점심을 차려 줄 수가 없고 한복을 다림질 할 수도 없고 나서부터 부쩍 살아가는 의미를 잃기 시작한 듯하다, 자식을 위해 할 일이 없다고 여겨서이다. 자식이 환갑을 넘겨도 변함이 없다.   

이런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은 읽을거리가 있었는데 아직 못 드렸다. 내일은 자료를 인쇄해서 간병하는 여동생에게 건네서 눈이 어두운 어머니에게 읽어 드리라고 해야 하겠다. 내처럼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소개한다. 금년 3월 27일자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내용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가?’이다. 이진순이 ‘죽음학 전도사’를 자처하는 서울대의대 정현채 교수와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사후세계와 윤회를 믿는 정 교수에게 죽음은 ‘꽉 막힌 돌담 벽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열린 문’이다.
“우리가 죽어서 육신을 벗어나면 진동하는 에너지체로 존재하는데 그 주파수에 따라 비슷한 에너지체끼리 모인다.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에너지 체는 그것끼리, 증오와 질투로 살아온 에너지 체는 또 그것끼리. 에너지 체 스스로 천국과 지옥을 만드는 셈이다.”
윤회를 인정하는 정 교수는 이 生의 삶은 이렇게 말한다.

“다음 生을 위해 나아가기 위한 아주 빡센 신병훈련소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제가 힘들다고 그만두는 건, 학교에서 월담해서 뛰어나가는 거랑 똑같다. 그럼 어떻게 되겠나? 다시 들어와서 또 처음부터 고생해야지.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이다!”

어머니와 병원을 다녀온 오늘, 밤이 이슥하여 문득 묵은 사진첩을 꺼내 든다. 고추를 내 놓은 어린 아기를 목욕시키는 앳된 새 각시 모습이 누렇게 변색이 된 옛 사진에 화사하게 피어난다. 호호 할머니가 된 지금의 어머니도 나에겐 사진속의 그 색시 마냥 여전히 아름답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