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공사 외주영업소 선진화계획으로 해고자 대량 발생

한국도로공사의 외주영업소 선진화 방안에 따라 대규모 해고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경남 사천의 한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요금수납원으로 2년 가까이 근무한 유현미(43) 씨. 그녀는 적은 월급이지만 직장이 있었기에, 남편 없이도 자녀 둘을 대학에 보내면서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계약기간이 2년 넘게 남았음에도 유 씨는 지난 6월1일자로 직장을 잃어야 했다. 이유는 한국도로공사의 ‘외주영업소 선진화 계획’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 때문이었다.

‘선진화’란 그럴 듯한 표현이 자신에게 ‘해고’라는 비수가 될 줄 미처 몰랐던 유 씨는 막막함과 억울함으로 사흘째 출근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녀의 출근투쟁은 ‘왜 하필 내가 구조조정 대상자여야 하는가’도 따지고 있다.

‘선진화’ 이름으로 전국 450명, 경남에만 57명 감축

도로공사는 차량이 이동하는 가운데 자동으로 요금이 정산되는 하이패스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부터 사실상 인력감축을 예상했다. 언제 어느 정도의 인력감축이 발생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던 셈이다.

하이패스 시스템이 전국으로 확대 보급된 2007년 말 이후 지금까지 하이패스 이용률은 꾸준히 증가추세에 있고 2009년5월 현재 전국 이용률은 37.4%이고, 경남은 이보다 약간 낮은 32.8%이다.

조만간 전국 이용률이 40%선에 이른다고 보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 10대 중 4대가 수납원을 거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도로공사는 이를 인력 구조조정의 근거로 삼고 있다.

고속도로 요금소 수납원 인력 감축은 하이패스 시스템이 도입될 때부터 어느정도 예고된 상황이다.
결국 고속도로 요금소에 하이패스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부터 수납원 일자리 감소는 어느 정도 예고된 셈이고, 그런 점에서 외주영업소 인력 감축을 무턱대고 탓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세계적 경기 불황 속에 일자리 창출과 고용 유지가 국가적 화두인 시기에 ‘선진화’란 이름으로 ‘무더기 해고’를 단행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는 따져볼 일이다.

특히 해고 당사자가 장애인가족이거나 여성가장 등 저소득층의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이어서 이들에게 해고는 치명적이다.

더욱이 ‘공기업 선진화’ 또는 대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해고는 노조나 해고당사자들이 공동대응 할 힘이라도 있지만 소규모로 쪼개져 있는 고속도로 요금소 외주기업의 특성상 ‘해고’의 고통은 고스란히 개인이 감내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물론 도로공사는 해고에 앞서 근무일수를 조정하는 등으로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 인원이 자연 감소할 때까지 신규채용 미루기, 인근 영업소나 휴게소에 일자리 알선하기 등의 고용불안해소방안을 외주영업소에 지침으로 내려 보냈으나, 이것이 지켜지는 곳은 많지 않다.

인력을 줄이라는 지침은 그 즉시 이행되는 반면 고용불안을 줄여 주라는 나머지 지침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도로공사는 “지침은 내려 보내지만 이행을 강제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6월 1일자로 해고된 유현미씨는 해고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3일 경남지노위에 ㅊ기업을 제소했다.

유씨의 이유 있는 출근투쟁

종합하면 하이패스 도입에 따른 인력 감축은 불가피하다는 게 도로공사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사천의 한 고속도로 영업소에서 사흘째 출근투쟁을 벌이는 유 씨의 행동은 무모한 행동일까?

고속도로 요금소에는 주로 여성이 근무한다. 그리고 이들 여성 중에는 가장으로서 힘겹게 한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고속도로 외주영업소를 운영하는 외주기업으로선 각종 고용지원금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이런 여성들을 채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또 고용유지가 절박한 이들이 회사 운영에 우호적인 점도 마음에 든다.

반면 2년 이상 계속 일하는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점은 큰 부담이다. 따라서 2년 만기를 앞두고 해고하는 경우가 많다.

유 씨의 경우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녀는 고용지원금 대상자로서 2007년 7월에 ㅊ기업에 입사해 3개월, 6개월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다 지난해 중반 ㅊ기업과 도로공사의 계약이 끝나는 2011년 말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그리고 올해 3월 외주사원 전원에게 해고예고통지서가 나오자 사직서 작성을 거부했다. 정리해고가 아닌 ‘자발적 사직’을 강요받은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계약종료가 아닌데도 근로자가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고, 반대로 경영상의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면 기업은 정부의 고용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유씨는 인사위원회가 열린 뒤에 근무평정표를 작성했다며 관련자료를 공개했다.
해고예고통지서는 4월10일에 다시 한 번 모든 사원에게 전달됐다. 직원들이 ‘외주영업소 선진화에 따른 인원조정’이란 낯선 말을 도로공사로부터 처음 전달 받은 날이기도 했다.

당시 ㅊ기업 직원은 사장을 포함해 모두 18명. 이 가운데 수납원은 11명이고 하루 3교대로 일했다. 인원 감축은 수납원 2명으로 잡혔다. 유 씨는 4월29일 출근과 동시에 자신이 해고 대상자임을 통보 받았고, 다른 한 명은 개인 사정으로 스스로 그만뒀다.

현재 유 씨가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해고 절차이다. 정상적인 인사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게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ㅊ기업은 “4월29일에 인사위원회를 열었으며, 근무평정과 입사시기 등을 고려해 해고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 씨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인사위원회가 열린다는 공지도 없었고, 결과에 관한 공표도 없었다. 5월22일 공람 신청을 통해 확인한 결과 4월29일에는 운영위원회가 열렸을 뿐이다.”

유 씨는 또 “내 근무성적 평정표를 작성한 것은 5월22일인데 그 이전에 근무평정을 참고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회사 차원의 자구노력이 부족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이런 이유를 들어 유 씨는 6월3일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나아가 4일 아침부터는 자신이 근무하던 영업소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하기로 했다.

유 씨의 이런 문제제기에 ㅊ기업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언론에 일일이 해명하거나 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인사위원회가 정상적으로 열렸으며 근무평정에 따라 유 씨를 정리해고 대상자로 선정했음을 분명히 했다.

유씨가 2년 가까이 근무한 경남 사천의 한 고속도로 영업소.
정부가 지금의 경제위기를 벗어나는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일자리 창출을 통한 내수 증대’이다. 실제로 이를 위해 많은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비록 ‘싸구려 일자리’라는 지적이 일지만, 사회적 일자리니 희망근로니 하는 것들이 그래서 태어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각종 ‘선진화’란 이름으로 있던 일자리마저 줄이고 있다. 정부나 큰 기업들은 인력 선진화 예고제니 일자리 나누기니 하는 것으로 그럴 듯한 보완책을 제시하지만 현실과 괴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ㅊ기업에는 유 씨 외에 조만간 정규직 전환을 앞둔 한 직원이 있지만 그도 7월에 해고가 예고된 상태다. 또 유 씨 외 다수 직원들이 6월30일로 계약이 끝나지만, 이 기업은 인력 자연 감소를 기다리지 않은 채 유독 유 씨만을 서둘러 해고시킨 셈이다.

그럼에도 말로는 떳떳하다. “우리도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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