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가의 ‘바빌론을 건설하는 세미라미스 여왕’
(Sémiramis construisant Babylone 1861)

▲ Sémiramis construisant Babylone 1861
어린 시절의 심리적 상처는 치유되기 어렵다. 특히 부모로부터 받은 심리적 상처는 그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외도와 불륜에 상처를 받아 여성 혐오에 가까운 태도로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일생을 보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의 근세 화가들 중 어린 시절부터 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미술 수업을 받은 사람은 대단히 찾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시기까지도 여전히 화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특히 신분이 높을수록)이 좋은 편이 아니었고 더불어 이 인식은 비교적 넓은 계층에 뿌리 깊었던 모양이다. 드가 역시 처음에는 루이 르 그랑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대학 법학부에 들어갔으나 학업을 포기하고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이 그림, 바빌론을 건설하는 세미라미스 여왕(Sémiramis construisant Babylone 1861)은 바빌론(정확하게는 앗 시리아)의 여왕 세미라미스(Sémiramis)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의 건설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 그림의 주인공인 세미라미스 여왕은 신화와 현실이 겹쳐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반인 반수(半人 半獸)의 여신 데르게토(혹은 아타르가티스)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아름답고 영리했던 그녀는 당시 앗 시리아의 재상 온네스의 아내가 된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왕(니노스 왕)을 사로잡았고 왕이 왕비로 삼겠다고 온네스를 급박하자 겁에 질린 온네스는 자살하고 만다. 왕비가 된 후 니노스 왕이 죽자 여왕으로 군림하며, 메소포타미아·이란 등지에 대대적인 건설공사를 벌였는데, 이 그림은 그러한 대 토목공사 중 유프라테스 강을 끌어들여 만든 바빌론 축성 장면으로서 신화와 현실이 공존하는 이야기가 드가에 의해 회화로 묘사되었다.

이 그림은 드가가 받은 다양한 회화적 영향을 보여주는데,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와 드라크르와(Eugène Delacroix)의 간접적인 영향과 친구였던 역사화가이자 상징주의 화가였던 모로(Gustave Moreau)의 영향이 이 그림 속에 녹아 있다. 그러나 좀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은, 드가가 1856년 이탈리아 중부의 아레조(Arezzo) 여행 당시 그 지역 출신의 중세 화가 프란체스코(Piero della Francesca, 1415-1492)가 샌프란시스코(San Francesco) 성당에 프레스코화로 그린 ‘전설의 만남’(Storie della Vera Croce) 연작 중 솔로몬과 시바의 만남을 보고 크게 영감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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