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로‘지혜의 향기’삼라만상에 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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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로‘지혜의 향기’삼라만상에 퍼져라
  • 하병주 기자
  • 승인 2015.07.2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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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그 3000년의 시간을 더듬다 ⑨ 다솔사와 차-효당차

국립진주박물관이 4월 16일부터 7월 30일까지 제12기 박물관대학을 운영한다. 주제는 ‘사천(泗川)’이다. 본촌리 유적과 이금동 고인돌 등 청동기시대에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사천 3000년의 역사를 아우른다. 뉴스사천은 박물관의 협조로 강의내용을 정리해 지면에 옮긴다.(편집자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다솔사와 야생차밭. 효당의 극진한 '차 사랑'을 활용한다면 사천의 차문화를 한층 살찌울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사 : 강순형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다솔사(多率寺)는 사천을 대표하는 고찰(古刹)이다. 지리산영악사중건비에 따르면, 신라 지증왕 4년(503년)에 영악사(靈嶽寺)라 이름 지어 창건했고, 이후 타솔사(陀率寺), 영봉사(靈鳳寺)로 이름을 바꾸다 신라 하대에 이르러 영악사로 중창했다. 그러나 그 절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다. 영악사중건비가 만들어지던 1704년에 다시 한 번 중창했지만 44년 뒤 또 불이 났고, 1758년에 중창하면서 지금의 다솔사로 이름을 바꿨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역사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고승들이 다솔사를 거쳐 갔음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그 중 비교적 근세에 인연을 맺어 다솔사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이가 있었으니 그가 효당 최범술(1904~1979)이다.

효당은 곤양보통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16년 다솔사로 출가했다. 해인사를 거쳐 1922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1928년에 다솔사 주지가 됐다. 다이쇼대학 졸업 후 귀국한 1933년부터 다솔사를 중심으로 한국 불교계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그는 귀국과 동시에 조선불교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았고, 1945년엔 조선불교중앙총무원의 총무부장, 1949년엔 해인사 주지도 맡았다. 불교청년들의 항일비밀결사인 만당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이 과정에 만해 한용운과 깊이 교류하기도 했다.

그는 교육계 업적도 뛰어났다. 1934년 8월엔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다솔사에 강원(講院)을 설립했다. 그해 10월엔 지금의 곤명면 원전에 광명학원을 세워 김동리(소설가)로 하여금 학교에 가지 못하는 동네 젊은이들을 가르치게 했다. 광명학원은 1942년 일제에 의해 문을 닫았다. 효당은 1936년 서울에 여성교육기관인 명성여학교를 설립해 초대 교장을 지냈다. 1948년엔 국민대학을 설립해 이사장을 역임했고, 1951년엔 해인고등학교를, 그 이듬해엔 해인대학을 설립했다. 해인고등학교는 지금의 진주동명고교, 해인대학은 지금의 경남대학이다.

효당 최범술(1904~1979)
효당은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고, 각종 문화예술인과 교류하며 다솔사가 문화예술의 산실 역할을 하는 데도 일조했다. 그리고 또 하나, 그의 평생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이자 업적이 남았으니, 바로 ‘차(茶)와 함께하는 삶’이다.

효당은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차 심부름을 하며 자랐다고 한다. 그리고 다솔사에 출가한 뒤로는 절 뒤 차나무에서 잎을 따 차를 만들어 마셨다. 일본 유학시절엔 일본의 차문화를 익히기도 했는데, 이후 그는 “백제나 신라시대에 우리에겐 이미 차를 마시는 법도가 있었다. 그것을 일본에 전해준 것도 우리 선인들이다. 일본은 그것을 계승 발전시켰는데, 우리는 소실되다시피 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라며 한탄한 적이 있다.

효당은 차를 직접 가꾸고 그 맛을 즐기면서 마시는 법을 가르쳤다. 책도 발간했는데, ‘한국차생활사’와 ‘한국의 차도’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 책에서 차 마시는 일을 “멋의 생활”이라고 표현했다. “차생활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우리들 인간의 기호나 취미에 있고, 이 취미나 기호는 바로 무한한 멋을 동경하고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강의를 맡은 국립문화재연구소 강순형 소장은 효당의 차 정신을 얘기함에 있어 이 ‘멋’과 함께 ‘차도무문(茶道無門)’을 빼 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차도무문이란 차를 즐김에 있어 특별한 규범이나 격식이 없고 누구나 어느 때라도 차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함을 말한다.

사실 강 소장의 이날 강의는 ‘차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찌 마시느냐’ 보다 ‘효당의 차 만들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차를 만드는 방법에 관해 효당이 구체적 기록을 남기지 않았음을 아쉬워하면서도, 20년간 효당을 모시면서 차를 직접 만들었던 사람이 아직 생존해 있음을 다행스러워했다. 곤양면 무고리 이기생(76) 씨의 증언과 기타 기록물에 나타난 효당차의 특징을 따라가면 다음과 같다.

생 녹차 잎에 열을 가하면 산화가 더 진행되지 않게 고정하게 되는데 이를 살청(=산화막기)이라 한다. 이 살청 방법에 따라 차 종류도 달라지는데, 덖는 것이면 덖음차(초차), 찌는 것이면 찐차(증차), 데치는 것이면 데침차(자차)라 부른다.

효당차는 데침차에 해당한다. 효당은 평소 끓는 물에 차 잎을 넣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 읊을 정도의 짧은 시간만 데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데친 것은 꾸덕꾸덕해질 때까지 말린 뒤 다시 가마솥에 넣어 덖고 비빈다. 잎에서 하얀 진액이 나올 때까지 빨래하듯 많이 비비는 것이 특징이다. 이후 보자기에 싼 채로 솥에 넣어 잠깐 김을 쐰 다음 뜨뜻한 가마솥에서 털어가며 비비며 살짝 말린다(=살짝 덖음). 그리고 이를 꺼내 온돌방에서 2차 건조하면 효당차가 완성된다.

이렇게 완성된 효당차는 검은 풀빛을 띤다. 이유는 비비는 과정에 상처가 많이 났고 마르는 시간이 길어 자연스레 약산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보통의 좋은 상품으로 평가 받는 녹차의 경우 잎의 형태가 어느 정도 유지되면서 밝은 풀빛을 띠는 것과 비교된다. 차를 우려냈을 때도 효당차는 더욱 노랗고 진하다. 효당은 이렇게 만든 녹차를 80도 정도의 물에 우려낸 뒤 찻잔에 절반이 못 되게 따르고 왼손으로 찻잔 아래를 받쳐 마셨다고 한다. 또 반드시 무릎도 꿇은 채였단다.

이른 바 효당차의 상품명은 반야로차(般若露茶)이다. ‘반야’는 지혜를 ‘로’는 이슬을 뜻하는데, 지혜의 이슬을 마신다는 뜻이 담겼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효당의 반야로차가 다솔사의 브랜드로, 나아가 사천의 브랜드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엔 과거 역사적 아픈 사건이 깔려 있음이다. 향기로운 차로써 그 상처를 치유하고 효당과 다솔사를 묶은 차문화를 전국에 보급하는 지혜가 발휘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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