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독일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어느 관광지 입구 기념품 가게의 남자 종업원이 우리 일행의 대화를 듣고는 반갑게 뛰어나오더니 자신이 예전에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면서 서툰 우리말로 “한국이 좋다, 한국 사람이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나 역시 이국땅에서 우리말을 하고 우리나라가 좋다는 폴란드 청년을 만나서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현재 국내 체류외국인은 180여만 명에 달하며 매년 10% 가까이 늘어나고 있으니 곧 체류외국인 200만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간 노동자로서의 권리,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제도의 적용, 범죄 피해자로서의 권리 등 외국인 노동자들의 법적인 지위가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동남아 출신 체류외국인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에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못사는 이웃을 차별할 권리가 없듯이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비하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그렇지만 백인에게 누구보다도 ‘친절한 한국인’이 동남아 출신 또는 흑인에게는 근거 없는 우월감을 과시하며 그들을 천시한다.

백색이든 흑색이든 황색이든 다들 얼굴색이 있으니 사람은 누구나 유색인종인데, 백인 외의 인종을 유색인종이라고 통칭하여 비하하는 것은 서양식 백인우월주의에서 비롯된 편견일 뿐이다. 그런데 막상 백인의 시각에서 유색인종으로 불리면서 비하의 대상이 되는 우리가, 또 다른 유색인종에 대해 편견을 갖고 차별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백인보다 못한 부류라고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천에 근무할 때, 삼천포항 주변 등 외국인들이 많이 오가는 지역의 주민들이 밤이면 무리를 지어 다니는 외국인들 때문에 불안해 한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그러나 사실 이들 외국인들은 국내로 잠입한 범죄자가 아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우리나라에 돈을 벌기 위해 찾아온 선량한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범죄율은 2% 미만으로 국내인 범죄율 4%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까닭이 실제 범죄의 위협보다는 편견, 즉 그들의 피부색에서 느끼는 혐오감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이제 한번쯤 다른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봤으면 한다. 밤거리를 무리지어 다닌다고 눈을 흘기기보다는, 타국에 와서 농사일이나 바다일로 땀 흘리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일과를 마친 후 또는 주말에 반갑게 만나 도란도란 고향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해주면 어떨까. 

▲ 백승면 전 사천경찰서장
“그들은 힘들게 일하면서 미국 사회와 경제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고, 자신이 사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일상에서 다른 미국인들과 삶을 공유하면서 개인적·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 내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평가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외국인노동자들은 대부분 낮은 보수를 받으며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일자리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우리 사회와 경제에 기여해 왔으니 그 공로에 대해 감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그때 내가 독일에서 만난 외국인이 폴란드 출신이 아니라 동남아 출신이었더라도 “한국이 좋다. 한국 사람이 좋다.”라고 했을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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