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화가 프레데릭 바질(L'Atelier de la rue Condamine 1870)

▲ L'Atelier de la rue Condamine 1870
프레데릭 바질(Frédéric Bazille, 1841–1870)은 전체적으로 인상파의 범주에 속하는 화가이다. 그는 의학 공부와 미술공부를 동시에 진행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물론 의사면허 시험에 낙방하여 의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의학공부는 그의 회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는 외젠 드라크르와(Eugène Delacroix)를 존경하여, 그의 어떤 그림은 마치 드라크르와(Delacroix)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상파 회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외광(en plein air – 영어 Outdoor)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바질(Bazille)은 이 원칙에 매우 충실하여 그의 작품 대부분은 외광에서 그려졌다.

1862년 그의 나이 21세 때 파리로 진출한 바질(Bazille)은 그의 인생을 바꿀 몇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 인상파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Pierre-Auguste Renoir)와 알프레드 시슬리(Alfred Sisley)였다. 이들과 교류 중에도 바질(Bazille)은 의학 공부를 계속하여 1864년 의사면허시험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한 뒤 본격적으로 화가 수업을 받게 된다.

바질(Bazille)이 화가 수업을 받은 곳은 인상파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스위스 출신의 화가 C샤를 글레르(harles Gleyre) 스튜디오였는데 위의 두 사람을 포함하여 인상파의 선구자 클로네 모네(Claude Monet)도 같은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공부하였다.

바질(Bazille)은 당시 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 개인 아틀리에를 소유하고 있었고 여기에 당시 유명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이 그림 콩다민 가(街)에 있는 화가의 작업실 (L'Atelier de la rue Condamine 1870)은 바로 그 아틀리에에 동료들이 방문한 순간을 묘사한 그림으로써 왼쪽 계단 밑에 앉아 있는 사람이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Pierre Auguste Renoir)이고 그 위 계단에 서 있는 사람은 유명한 저술가이자 소설가이며 평론가인 에밀레 졸라(Emile Zola)이다.

그 다음은 이들보다는 나이가 많은 에두아르트 모네(Eduard Monet)와 모자를 쓴 아직은 30대인 클로네 모네(Claude Monet)가 서 있다. 그 다음이 이 방의 주인인 바질(Bazille)인데 자신의 그림을 여러 사람에게 설명하고 있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없으나 당시의 저명한 음악가 중의 한 명이었을 것이다.

바질(Bazille)은 이 작품을 끝으로 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입대한 한 달 후, 보불 전쟁이 발발하여 그는 바로 전장에 투입된다. 그는 전투 중에 지휘관이 사망하게 되자 대신 부대를 이끌다가 29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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