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령을 받은 통영시에는 극단이 하나 있었는데, 시장 통의 낡고 큰 건물 지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날 극단단장인 장 단장이 처량하게 한 숨을 쉬며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원래부터 이 지하 공간은 시청 소유인데 무상으로 빌려 쓰는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무단 점유였다. 단장이 공공연한 야당인사였기에 시청으로써는 극단사무실이 골치였다. 이번에 내려 온 시장은(당시는 관선의 임명제 시절이다) 완강해서 강제로 행정 대집행을 할 태세란다. 그에 대응할 유일한 방법은 빠른 시일 안에 지하공간을 소극장으로 개조하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휴우, 무슨 돈으로 극장을 만들꼬! 돈이라고는 없는데...”
“돈이 왜 없소? 은행에 가면 많고 많은 게 돈인데. 대출을 받으면 되잖아요?”
“어떤 은행이 내 같은 백수건달에게 돈을 빌려주겠소? 이제 연극을 접을 때가 된 모양이요.”
“신분이 확실한 공무원들이 보증을 하면 되겠지요. 내하고 또 다른 교사 한 명 세울게요.”

그리곤 동료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권 선생, 재직증명서, 인감증명서 한 통씩 떼어오소, 용도는 보증용으로 하고요.”

권 선생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서류를 가져 왔고 그날로 J금고에서 대출 절차를 밟았다. 난 교육민주화 운동으로 미운털이 박혀 사천으로 강제 전출되었기에 소극장 개조 작업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런데 기막힌 사건이 발생했다. 지지리도 불운한 장 단장은 소극장 개관식을 하루 앞두고 밤중에 급사해 버렸다. 통영의 풍운아 한 명이 허무하게 그렇게 스러졌다 당시 40대 초반의 아까운 나이였다.

이듬 해 퇴근 무렵에 서포중 교무실로 통영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젊은 사람인데 Y셔츠 목이 조이는지 연신 넥타이를 풀었다 조였다 하면서 힘들게 말하는 내용인즉, 장 단장 사망이후 원금은커녕 단 한 차례 이자도 들어오지 않았기에 부득이 조처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소? 당장에 그런 목돈은 없는데.”
“저, 저, 그렇다면 말입니다. 양해해 주신다면 다음 달부터 봉급에 압류를 ...”
“그럽시다. 그리고 압류는 내 혼자에게만 합시다. 다른 보증인은 내 부탁으로 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같이 식사합시다, 밥 때 손님을 그냥 보내면 원래 예의가 아니라오.”

금고직원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선선히 도장을 찍어주고 밥까지 사주며 보내니 그 젊은 친구가 눈물을 글썽이며 갔는데, 어떻게 좋은 말을 했는지 고리대금으로 유명한 J금고가 최저 금리로 처리해 주었다. 3년 남짓 급여가 압류되어 내 생활을 각박하게 했던 게 ‘벅수골소극장’이다. 이번 여름에 통영 연극축제가 열렸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문득 옛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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