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외교 프로젝트‘1318 아시아를 품다’
3편 껀달 한국어학원과 야니 씨

※ ‘1318 아시아를 품다’는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가 외교부의 지원으로 진행하는 공공외교 프로젝트이며, <뉴스사천>은 그 진행과정을 동행취재 해 6회에 걸쳐 싣는다.

▲ 껀달의 한 학교에서 인도네시아 학생들이 우리 청소년들을 향해 카메라 세례를 보내고 있다.
인도네시아 도착 첫날 두 이주노동자(수완다, 피흐리)의 고향집과 한때 이주노동자였던 현지인(수립또)의 집까지 강행군을 마치고 버스에 몸을 맡겼다. 다음 목적지까지 다시 5시간 넘게 달려야 한단다. 고단함에 눈을 감았지만 잠이 쉬 들지 않았다. 그래서 창밖 풍경을 기억에 담아두기로 했다.

그곳 인도네시아 풍경을 간단히 요약하면, 일단 산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도로 양 옆으론 지평선이었다. 마을형태는 주로 열촌. 도로와 나란히 건물이 한두 채 있을 뿐 그 너머까지 집이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도로를 따라 ‘한 일(一)자 식으로 건물이 늘어섰다고나 할까. 건물 너머는 주로 논과 밭이었고, 거기엔 1년 내내 따뜻한 나라임을 으스대듯 몸집과 여물기가 제각각인 벼와 옥수수 따위 곡물이 자라고 있었다.

도로는 거의 일직선이었고, 갈림길 만날 일도 별로 없었다. 그 밋밋하고 심심한 도로에는 수많은 오토바이가 주인공인 양 내달렸다. ‘저러다 부딪히지’ 하고 마음 졸이는 건 오히려 나였고, 어린 소녀에서 나이든 노인까지 신기할 만큼 잘 미끄러져 다녔다. 이것이 넓은 섬나라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풍경인진 알 수 없으나 지금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면 첫인상으로 깊이 각인된 건 분명한 모양이다.

일행은 밤11시를 훌쩍 넘겨 껀달에서 하나뿐인 한국어학원에 도착했다. 이곳 주인은 야니 씨로, 그 역시 7~8년 전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했다. 회사가 사천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를 알게 됐고 이정기 센터장을 만나게 됐다. 다른 이주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야무지다고 여긴 센터장이 “고향에 한국어학원을 차려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자 야니 씨는 바로 동의했다.

어렵게 이룬 한국행 꿈과 남은 3년 정도의 한국생활을 포기하기가 쉽진 않았으나 야니 씨는 단호히 움직였다.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집에 무궁화학원이란 푯말을 걸었다. 말이 학원이지 시골집 사랑채쯤에서 청년들 두서너 명과 마주 앉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집 옆에 새 건물을 짓고 50여 명의 학원생을 뒀다. 학원이름도 진주학원으로 바꿨다. 그가 잠시 생활한 진주라는 도시와 보석 펄(=pearl)에서 착안한 이름이었다. 껀달시 관내 3곳의 학교에 한국어반을 개설하는 성과도 올렸다.

▲ <진주학원> 원장 야니 씨.
이튿날 일정은 대체로 야니 씨가 잡아둔 계획대로 움직였다. 아침부터 현지 고등학교 학생 10명이 학원으로 왔고, 우리 청소년 공공외교관들과 짝지가 되었다. 그들은 껀달에 머무는 동안 우리 애들의 친구 또는 파트너인 셈이었다.

일행은 젤 먼저 껀달시청을 방문했다. 당초 시장을 접견할 예정이었으나 우리를 맞은 건 부시장과 국장급 간부공무원이었다. 지방선거를 3개월 남짓 남겨뒀으니 자세한 얘기가 없어도 시장의 공사다망함을 헤아릴 수 있음이다.

의례적 인사로 분위기가 따분할 즈음 국장이 반짝 아이디어를 냈다. 솔비와 지민, 양혜를 앞으로 불러낸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에도 세계로여행학교에 참가해 껀달시청을 방문한 경험이 있었고, 당시 인도네시아 전통혼례라는 귀한 체험을 맛본 터였다. 국장은 타국의 젊은 친구들에게서 그때의 소감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무난한 멘트가 이어지던 중 지민의 말에 좌중이 빵 터졌다.

“나보다 나이 많은 딸을 시집보냈던 거라 전혀 감응이 없었는데요!!”

1년 전 지민은 중2 나이에 중3이었던 양혜를 시집보내는 친정아버지 역할이었다.

시청 다음은 학교였다. 정확하진 않으나 야니 씨가 한국어과정을 개설한 학교인 듯했다. 학교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고, 청소년들은 정말 공공외교관이 된 듯, 아니면 마치 유명 연예인이라도 된 듯 그들과 악수를 나눴다.

그들이 우리 일행을 마음으로 반겨주는 것에는 한류의 영향이 분명 작용하는 듯 했다. 특히 인도네시아 청소년들에겐 한국 드라마와 노래가 결코 낯설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뭔가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갑갑함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이정기 센터장이 갈증을 뻥 뚫어줬다.

“인도네시아 고등학교는 SMK와 SMA로 나뉘는데, SMK는 기술계고교, SMA는 인문계고교로 보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는 학교는 다 기술계고교인데, 이유가 뭔 것 같습니까?”

그 제야 안개가 걷혔다. 이들은 바로 제2, 제3의 야니, 수완다, 피흐리 씨가 되고픈 꿈을 꾸고, 꿈을 좇고 있는 것이었다. 꿈은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가는 것이고, 이를 위해 기술을 익혀야 하고 한편으론 한국어를 익혀야 했다.

▲ 껀달 현지 언론의 열띤 취재.
이날 오후,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오전에 만났던 시청 국장과 다시 마주쳤다. 이번엔 10여 명의 현지 기자들과 함께였다. 빡빡한 일정에 지친 공공외교관들 못지않게 그들도 지쳐 보였다. 아마도 몇 시간째 기다린 모양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인도네시아 전통 염색법이라 할 수 있는 ‘바??rsquo; 체험 기회를 가졌다. 또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빚어보기도 했다. 기자들의 눈은 호기심 가득한 시은과 민지에게 쏠렸고, 이날 이야기는 일행이 숙소로 돌아오기도 전에 기사화 되어 전파를 탔다.

“2014년 방문해 중자바의 전통결혼식을 배웠던 한국 학생들이 이번에는 바띡문화??배우기 위해 다시 껀달을 찾았다. 처음에는 약간 서툴러보였으나 그들은 열정을 보였다. 참가 학생 황민지는 ‘바띡??직접해보니 어려웠지만 만들고 나니 너무 아름답다’고 말했다. 한국어학원을 운영하는 야니 씨는 ‘양국 청소년들이 교육, 문화,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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