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C초 프로 권투의 초창기 시절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A라는 프로권투 선수가 있었다. 당시 복싱은 요즘 같이 정교한 기술이 개발되지 못한 때라 맷집이 좋아 매를 잘 견디고 힘이 좋아 주먹이 세면 시합에서 이기던 그야말로 원시적인 권투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A는 꾀가 많아 헤비급으론 체격이 적은 편이었지만 거뜬히 챔피언으로 등극한, 요즘으로 따지면 기교파 선수다.

그는 링에 오르면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상대가 힘이 쑥 빠져 기진맥진할 때 반격을 가하는 전술로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전자 B가 나타났는데 예사내기가 아니었다. 무작하게 마구 덤비는 타입이 아니고 나름대로 공수 기술을 가지고 치고 빠지는 싸움에 능할 뿐 아니라 체격과 힘도 좋았던 것이다.

비슷한 기술이면 체력이 강한 쪽이 이기는 것이 복싱이다. 이 시합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고 언론들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자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살살 피어나기 시작했다. A가 깊은 병에 들었다는 것이다. 시합을 앞 둔 선수가 아프다니? 기자들이 탐문을 해보니 실제로 A 캠프는 의기소침해 있고 A는 연습도 하지 않았다. 가슴 쪽에 문제가 있다는 은밀한 소식이 돌았다.

시합 당일, 아니나 다를까 A는 파리하고 수척한 모습이었고 자세히 보니 오른 쪽 가슴 쪽에 검게 멍든 모습이 보였다. 시작종이 울리자 B는 야수마냥 달라 들어 가슴 쪽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A는 오른 쪽 가슴에 가드를 빠짝 붙이고 수비하기에 급급했다. A의 승리가도도 이제 끝이 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시합의 결과는? B는 A의 약점인 우측 가슴을 열심히 가격하였다. 원래 가슴은 두툼한 대. 소흉근으로 쌓여있어 강한 부위이고 수비하기에도 수월하다. B는 무리하게 가슴만 공격 하다가 오히려 A로부터 무수히 얻어맞고 마침내 KO되어 버린 것이다. 실제 내막은 이랬다. A는 가슴에 병이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고는 낮에는 자기만 하고 훈련은 심야에만 했다. 시합 당일에는 얼굴에 창백한 분장을 하고 가슴에는 숯을 비벼 멍이 든 것 인양 속인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B는 무모하게 파고들어 기껏 가격에 성공한다 해도 강한 근육만 골라 때린 꼴에 불과했다. 교활한 챔프 A에게 도전자 B가 깨끗이 속은 것이다. 

 이 오래된 권투시합이 문득 생각난 것은 지난달 발생한 북한의 지뢰 도발 사건 때문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정말 위력적인지에 대해 논란이 여전하다. 대북 전문가나 탈북자들도 확성기 방송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다. 탈북자인 주승현(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통일학 박사)씨는, ‘나도 그렇지만 내 주변 북한이탈주민 중에 확성기 방송 듣고 남한으로 온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권투선수 A의 거짓 꾀병에 속아 헛힘만 쏟다 KO패 당한 B꼴이 될까 걱정이 된다. 평화도 힘이 있고 현명해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니까.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