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문화박람회를 열다

▲ 문화박람회 중 바람개비 동산을 만든 청소년들.

10명의 청소년들이 공공외교관이란 이름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진행할 가장 큰 이벤트는 뭐니 뭐니 해도 ‘대한민국 문화박람회’였다. 박람회 전날 밤, 행사장인 껀달의 기술계고교 ‘SMK N2 KENDAL’에서 주인공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무대를 꾸몄다. 여기엔 한국 청소년들의 짝지이면서 이 학교 학생이기도 한 현지 청소년들이 동참했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뚝딱뚝딱 망치질을 하는 동안 이들이 더욱 가까워졌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 이들이 좀 더 가까워져야 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이날 밤 잠을 각자의 짝지네 집에서 자야 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홈스테이인 셈이었는데, 짝지네 집으로 향하는 청소년들 표정이 각양각색이었다. 호기심과 기대에 찬 눈빛이 있는 반면 근심어린 얼굴빛도 있었다.
 

▲ 헤이짐은 늘 아프다.

그런데 뒤에 들으니 이 시간이 하나 같이 좋았던 모양이다. 짝지네 집에서의 하룻밤이 진정한 인도네시아를 느끼는 시간이었다나! 맏이인 원호가 늘어놓은 자랑은 이랬다.
“저녁을 먹는데 왠지 맨손으로 먹어야 할 것 같아 그렇게 했더니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오토바이로 시원한 밤바람 맞으며 축제 구경도 갔죠. 그때 내가 마치 인도네시아 현지인이 다 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나라에 푹 빠진 것 같아요. 음식은 또 얼마나 먹었는지. 그만 달라는 표현을 못해서 주는 대로 계속 먹을 수밖에 없었어요.”

홈스테이의 추억은 원호 아닌 다른 팀원들에게도 각별하게 다가왔던지 여행후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밤 10시께부터 다음날 아침 6시30분. 잠 잔 시간을 빼면 쓸 시간도 별로 없었겠다 싶지만 홀로 주인공이었던 그 시간, 그 공간이 대단히 특별했음은 미뤄 짐작할 수 있겠다.

인도네시아의 하루는 일찍 시작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등교시간은 오전7시. 오전 10시쯤 되니 초등학생들은 벌써 집으로 향하고, 중고교생들도 오후2시쯤엔 수업을 마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무더위, 대중교통 따위와 상관이 있지 않을까 상상할 뿐이다.

공공외교관 청소년들과 파트너들은 아침 7시가 되기 전 학교로 모여들었다. 이제 문화박람회를 할 차례다. 무대를 꾸며 놓은 행사장인 강당에 학생들이 가득 찼다. 얼추 200명 남짓이다. 한 남학생의 구령에 따라 모든 학생들이 일사분란하게 일어서거나 앉고, 어린 애들처럼 떠들다가도 뚝 그치고 하는 모습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자유분방함과 절도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30~40년 전 군사정권 시절 우리네 모습도 저러했던가. 같은 듯 다른 느낌이다.

환영사와 답사, 학교소개 등이 이어지는 동안 분위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문화박람회의 성공적 시작을 위해선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다. 반전! 그렇다. 청소년들이 이때를 대비해 준비해 둔 게 있지 않았던가.

“인도네시아 따나 아이르꾸 따나 뚬빠 다라꾸~~”
인도네시아 애국가인 ‘인도네시아 라야’가 間문화교육연구소 조은희 소장의 우쿨렐레 연주에 맞춰 울려 퍼졌다. 10명의 한국 청소년들이 부르는 자기네 애국가에 인도네시아 청소년들이 순간 술렁였다. 낯설고도 신기한 풍경에 얼굴엔 웃음이 번졌다. 곧 강당의 모든 청소년들이 ‘라야’를 제창했다. 그제야 우리 아이들 얼굴에도 긴장이 걷히고 웃음이 찾아왔다. 분위기 반전 시도가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문화박람회는 순풍에 돛 달 듯 순조로웠다. 한쪽에선 고무도장에 한글이름을 새기고 미리 준비한 대형 태극기 문양에 도장을 찍어 완성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다른 곳에선 사람 모양의 배경에 색종이를 붙여 작품을 만드는 팝아트, 그 옆에선 색면분할그림 작업이 시도됐다. 바깥 정원에서는 수백 개 바람개비가 ‘바람개비 언덕’을 표현하고 있었다.

부분을 보면 별 것 아니지만 전체를 보면 균형과 조화, 아름다움을 주는 작품들. 이것들이 관통하는 하나의 가치를 꼽으라면 ‘다양성 존중’일 테다.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과 함께한 이정기 센터장의 10여 년 세월의 신념이자 청소년 공공외교관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외치고픈 주제이기도 했다.
문화박람회 말미엔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와 껀달교육청 사이에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청소년 국제문화교류와 이주노동자 지원에 상호 적극 지원하고 협조체제를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새로 뗀 이 발걸음이 미래에 또 어떤 열매로 돌아올지 기대감을 갖게 한다.

문화박람회는 그렇게 끝나고, 이제 이별의 시간이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예정에 없던 공연을 준비했단다. 극 형식을 갖춘 전통 춤 공연에는 예리와 시은이 파트너도 참여하고 있어 일행은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이어 깜짝 행사가 하나 더 이어졌다. 돌을 맞는 아기에게 행하는 전통 축하의식이라고 했다. ‘아니, 이건?’ 이런 생각을 갖기 무섭게 멀리 그가 보였다. 껀달시청에서 우리를 맞았던, 또 바띡 체험 당시 기자들과 나타났던 그 국장이었다.

“지난해 전통 결혼식을 체험했으니 이번엔 돌잔치 의식을 보여주고 싶다.” 그가 어제 시청에서 했던 말이다. 그리고 하루 만에 실천에 옮긴 셈이다. 그것도 진짜 돌을 맞은 아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어느 집단이든 그가 가진 전통에는 고유의 정체성이 녹아 있기 마련인데, 그 정체성을 보여주거나 공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우린 어찌 이해해야 할까? 단지 문화적 자부심의 발로이진 않을진대. 한국 청소년들을 향한 진정 어린 애정의 표현이라면 과대망상일까?

서른 시간. 10대 청춘들에겐 이 정도로 충분했나 보다. 마음을 열고 나누고 쌓고. 언어와 국적의 다름도 방해가 되지 않았나 보다. 다음 목적지로 떠나야 할 버스는 이별의 눈물 앞에 한참을 머뭇거렸다

▲ 생일을 맞은 청소년들과 깜짝 이벤트.

▲ 인도네시아 전통 춤 공연 모습.

▲ 이름을 새긴 도장으로 태극기를 제작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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