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cimetière de Saint-Privat 1881)

보불전쟁이 개전된 얼마 뒤인 1870년 8월 18일 프랑스와 독일(당시 프로이센)의 국경지대인 메츠(Metz)에서 10Km 떨어진 Gravelotte 에서 벌어진 전투가 Bataille de Saint-Privat(생 프리바 전투)이다. 지명을 따서 Bataille de Gravelotte(그라벨로떼 전투)라고도 불린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 진지를 공격했던 프로이센 군은 약 1시간 만에 8천명의 전사자를 냈으나 결국 전체적으로는 프로이센의 승리로 끝을 낸다.(메츠를 프로이센이 점령한다.)

그림의 제목은 Le cimetière de Saint-Privat 는 생 프리바의 공동묘지라는 뜻인데 생 프리바 마을의 중심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의 한 장면을 사진처럼 묘사하고 있다. 화가는 Alphonse-Marie-Adolphe de Neuville(알폰소 마리 아돌프 드 뇌빌 1835~1885)이다. Eugène Delacroix(외젠 드라크르와) 밑에서 공부한 아카데미 화가로서 Pas-de-Calais(파드 칼레) 주 Saint-Omer(생 오메르)의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미술학 학위를 받고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군학교에 입교한다. 하지만 이로부터 그의 예술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는데 바로 데타이유와 같은 군사화가로 유명해졌다. 1861년 파리 살롱에 데뷔한 뒤 일생 동안 전투 장면과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 그림에서도 뇌빌은 프리바 공동묘지에서 일어난 전투의 장면을 마치 사진처럼 묘사하고 있다. 폐허가 된 공동묘지를 사이에 두고 프로이센 군대와 프랑스 군대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여러 명의 병사는 이미 총에 맞아 절명하였고, 오래된 성벽을 엄폐물로 또 몇 명의 병사들은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있다. 묘지 중앙의 작은 샛문을 사이에 두고 프로이센 군(검은 색 군복)과 프랑스 군(붉은 색 바지)이 백병전을 벌이고 있다. 더러는 죽고 더러는 부상 당한 채 나 뒹굴고 있으며 멀리 또 다른 병사들이 여기 저기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기록적 장면은 마치 사진처럼 당시의 정확한 장면을 묘사함을 생명으로 하는데 뇌빌은 매우 정교한 붓 놀림으로 전투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이 그려 진 것은 전투 후 10여년이 지난 1881년이기 때문에 이 그림은 온전히 뇌빌의 상상으로만 그려진 그림이다.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인류역사에서 전쟁 없던 시절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서로를 죽이고 죽여야 하지만 어떤 병사도 서로에게 어떤 개인적 감정이 존재해서 일어나는 살육은 아니다. 피 흘리는 저 병사들은, 오로지 정치가들과 권력자들에 의해 장기판의 졸처럼, 혹은 바둑의 검은 돌 흰 돌처럼 아무런 명분 없이 권력자와 정치가들의 욕망과 명예를 위해 소모되고 마는 존재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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