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니 아침저녁 공기가 더욱 차갑다. 하루가 다르게 옷을 갈아입는 산과 들녘, 바다를 보노라면 곧 추운 겨울이 닥칠 것임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추위에 당당히 맞서고 견딜 수 있는 것은 희망 때문이리라. 겨울이 가면 다시 봄이 오고 더운 여름이 올 것을 알기에 힘을 낼 수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조선업계를 보면 차마 이런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세계조선업의 불황 속에 중국 등 조선 신흥국의 진출로 우리 업체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여파는 사천에 주소를 두고 있는 SPP조선에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SPP의 고난에는 이전 경영진의 경영 실패 책임도 있겠으나 조선업 불황의 그늘이 길어지고 짙어진 사정도 간과할 수 없다.

2010년부터 채권은행단에 관리를 받아온 SPP는 최근 들어 그 운명이 풍전등화다. 고성과 통영 공장을 차례로 문 닫은 데 이어 지난달엔 150명이 넘는 직원을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정리했다. 이는 전체 직원의 20%에 육박하는 수치다. 여기에 채권단은 사천 SPP에 대해서도 매각 공고를 한 상태다. 직원들은 안타깝고 착잡하지만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그런데 채권단은 더 가혹한 조치를 내놓고 있다. 어렵게 확보한 신규 수주에 반대한 것이다. 채권단 사이에도 이견은 있었으나 반대 의견이 더 강했던 모양이다. 신규 물량을 확보하지 말라는 것은 현재 남은 일감만 마무리하고 사업을 끝내라는 것으로 읽혀, SPP 직원들이나 이를 지켜보는 지역민들 모두 안타까운 심정이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8~9월이면 사천공장에서의 일은 모두 끝난다는데, 그럼 남는 400명의 직원과 2000명의 협력업체 직원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SPP는 사업초기에 온갖 특혜를 제공받는다며 사천시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은 바 있다. 어쩌면 일부에선 지금도 그런 시선이 유효할지 모른다. 하지만 폐업 위기로 치닫는 현 상황을 보며 모른 체 하기도 어려울 일이다. 부디 채권단이 수천의 직원들의 삶을 깜깜한 터널로 내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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